사설·칼럼 사설

[fn사설] 24시간 불켜진 TSMC 연구실, 우린 강제 칼퇴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1.04 18:47

수정 2024.11.04 18:47

첨단기업까지 획일적인 주52시간
기술패권시대 이대로면 낙오대열
대만 반도체 회사 TSMC. /사진=뉴시스
대만 반도체 회사 TSMC. /사진=뉴시스
국내 첨단기업들이 경직된 근로시간에 발목이 잡혀 해외 경쟁사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대만 등 경쟁국에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까다로운 노동규제로 집중과 선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반도체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기술패권 시대 승자독식의 첨예한 전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낡은 제도에 묶여 뛰지 못한다면 치명적인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각심을 갖고 융통성 없는 제도를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 연구개발(R&D)센터가 주 7일, 하루 24시간 내내 불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유연한 근무제도 덕분이다. 대만은 주 40시간제를 채택했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를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새벽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퇴근하고 오후에 다시 회사로 나오는 연구원도 많다고 한다. 자유로운 밤샘근무, 중단 없는 연구가 쌓여 기술은 차곡차곡 축적될 것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도 마찬가지다. AI 시대 최대 수혜기업인 미국 엔비디아 직원들은 주 7일 새벽까지 일하고 수시로 초과근무를 한다. 엔비디아의 고강도 근로문화는 유명하다. 엔비디아 전직 직원에 따르면 30인 이상 회의가 하루 최대 10회씩 열린다.

그런데도 이직률은 2%대(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 업계 평균 17%보다 훨씬 낮다. 고강도 업무에도 직원들이 엔비디아를 떠나지 않는 것은 파격적인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엔비디아 직원들을 '황금수갑(높은 인센티브)'을 차고 주 7일 근무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애플은 아이폰 개발팀을 격년 주기로 돌리며 제품을 개발한다. 1년6개월은 고강도로, 시제품을 검증하는 6개월은 여유 있게 근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몰아서 연구하고 바쁜 시즌이 지나면 미뤘던 휴식시간을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유로운 근무와 파격적인 보상이 개발 의지를 북돋우고 결국 획기적인 성과를 끌어낸다.

한국 기업의 경우 업종에 상관없이 강제된 주 52시간제의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분일초가 급한 반도체 기업 연구원들이 한창 개발 테스트를 하다가 규제시간에 걸려 실험실을 나와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경쟁사는 한밤에도 뛰고 있는데 우리만 강제로 불 끄고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이러고 기술경쟁이 가능하겠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수준 격차가 선두 국가와 갈수록 벌어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고소득자·테크기업 종사자·연구개발자 등을 대상으로 노동규제 예외 적용을 두고 있는 해외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일본의 '고도 프로페셔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업무 고유의 특성을 살려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시급히 손봐야 한다.
이대로는 해외 경쟁사를 결단코 이길 수 없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