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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의 정책진단] 잊어서는 안 될 정책 실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1.05 18:31

수정 2024.11.05 19:59

탈원전 대표적 정책 실패
전력 생산단가 급속 상승
세계시장 주도권도 잃어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정치의 실패는 금방 눈에 띈다. 하지만 정책의 실패는 한참 후에야 보이고 또 치명적이다. 더구나 정책 실패가 포퓰리즘에서 야기된 것이라면 피해는 국민과 국가, 나아가 역사가 보게 된다. 탈원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탈원전은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대표적 정책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원전은 사고가 일어나면 대규모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탈원전을 선언했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신규 원전건설 계획도 철회했다. 그리고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중단하면서 폐쇄했다. 그러면서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늘리는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웠다.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2030년에 40%로 한다고 국제사회에 약속까지 했다. 2016년 파리기후협약 당시에는 증가 추세를 감안해 2030년 예상되는 배출량의 37%를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2018년 대비 40%를 줄이는 NDC 목표는 증가 추세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2030년 실제 감축부담은 2018년 이후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배출량도 포함해야 하므로 감축부담은 급증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탈원전하면서 감축하겠다니 애당초 실현 가능성은 없었다.

이렇게 무모한 선언과 계획은 결국 전력 생산단가를 급격히 상승시키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급속히 커졌다. 여기서 또 한 번의 포퓰리즘이 발동했다. 국제적인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동결했던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정치적으로 부담된다는 이유로 눈 딱 감고 그냥 지나갔다. 결국 한국전력은 2017년 이후 영업손실을 보기 시작하면서 2022년에는 한 해 32조원에 달했고, 부채는 2023년 200조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가스공사 또한 가스요금 동결 결과 2023년 말 기준 미수금이 16조원에 달했고 부채는 47조원을 넘어서 부채비율이 500%를 초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최대 9배까지 올랐고, 탈원전으로 LNG 수요가 커졌는데도 가격이 묶여있어 두 에너지 공기업이 그야말로 골병이 든 것이다. 이는 두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상 최대 규모 부채는 채권발행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그리고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탈원전이라는 정책 실패가 너무도 뼈아픈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잠시 가졌던 세계 원전시장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우리 원전은 당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성공을 기반으로 원전 수출 전망도 밝았다. 당시 체코와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우리 원전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 기회를 탈원전으로 날려버렸다.

지금 와서 탈원전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아직도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정치적 부담으로 전기요금을 제대로 인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문재인 정부 당시의 기시감이 생겨서이다. 요사이 정치 실패에 모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라서 또다시 정책 실패는 묻힐 가능성이 크다. 정치 실패에 책임을 묻는 관심의 1%라도 정책 실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포퓰리즘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탈원전의 아픈 과거를 씻어내고 미래로 가는 체계적인 노력을 할 때이다.
첫째,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둘째,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등 에너지 가격과 가격 결정체계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셋째,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원전시장에서 K원전의 위상을 세우면서 미래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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