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Pride In Samsung’을 기억하자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1.07 19:24

수정 2024.11.07 19:24

김준석 산업부
김준석 산업부
#. 가시밭길 위로 riding/you made me boost up/거짓으로 가득 찬 party 가렵지도 않아/내 뒤에 말들이 많아/나도 첨 듣는 내 rival/모두 기도해 내 falling/그 손 위로 I'mma jump in.

하이브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의 미니 2집 타이틀곡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 가사 중 일부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위기론에 절치부심 중인 삼성전자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전 위기론이 사법 리스크와 메모리 겨울 등 외풍에서 시작됐다면 이번에는 삼성이 자랑하는 초격차 기술력에서 균열이 생겨 심각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기술리더가 없다는 지적을, 일각에서는 옥상옥 조직과 개인의 선택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오나 수많은 반례가 있어 사후적 해석에 불과하다.

삼성의 위기 돌파를 위해 'Pride In Samsung' 정신의 부활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최고 대우를 받는 일부 임원들이 삼성이라는 조직보다 개인의 영달을 앞세워 당장의 성과에 집중하면서 기술력 약화를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임원 간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각종 사업들이 몇 사람의 MBO(목표에 의한 관리)를 위한 '트로피'로 쓰이고 있다. 실무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설익은 기술들을 과도하게 빨리 도입하면서 '세계 최초 개발' 타이틀은 무수히 따냈으나, 양산 혹은 안정적 수율(양품 비율) 확보에는 번번이 실패해 체면을 구겼다. 급기야는 30년 동안 1위를 수성한 D램의 선단 제품에서도 참혹한 수율을 보여 전영현 DS부문장이 재설계까지 지시했다.

노키아·소니의 전철을 밟느냐, 재도약하느냐의 길 앞에 선 삼성에는 이제 시간이 없다. 조직의 신설도, 인재의 영입 혹은 경질도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다. '방향은 맞다' 식의 유체이탈 화법이 아닌 삼성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

최근 신입사원 연수를 다녀온 지인은 'Pride In Samsung' 조형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릴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두고 오지랖을 부리는 이들이 자존심을 긁는 게 못마땅하다는 이유에서다. 안티프래자일 말미에 "더 높이 가줄게 내가 바랐던 세계 젤 위에"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번 위기가 파격적 쇄신의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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