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경제의 키워드는 '혁신'이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파괴적 혁신의 물결이 글로벌 경제로 밀려오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도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폐쇄성을 넘어서 외부 자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방형 혁신이라고도 불리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전통적인 내부 연구개발(R&D)에서 벗어나 기업 외부의 다양한 자원과 아이디어를 활용함으로써 혁신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벤처투자다. 기업은 스타트업에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기술과 시장 트렌드를 신속하게 포착하고,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자본과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오픈이노베이션 과정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CVC는 통상 기업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털을 의미하는데,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전략적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특징이 있다.
CVC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세계적으로 벤처투자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벤처투자 중 절반가량이 CVC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점차 CVC 투자 비중이 늘고 있다.
국내 지주회사 정책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지난 2021년 큰 전환점을 돌았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을 통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인 CVC를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에 대해서는 금융보험사의 소유·지배를 제한하는 금산분리를 시행하고 있다. 즉 대기업집단이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여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고, 산업의 부실이 금융으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그러나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떠오르는 한편, 경제위기로 벤처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CVC에 한해서는 금산분리의 예외를 허용할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여기에는 대기업 지주회사에 유보된 풍부한 유동성이 혁신적 벤처기업으로 흘러가도록 하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있었다.
도입 3년 차를 맞이하는 지주회사 CVC 제도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13개 일반지주회사에서 CVC를 운영하고 있는데, 2023년에만 101개 스타트업에 1764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행위제한 규제 등 안전장치들이 잘 작동하면서 도입 당시 우려되었던 지배력 확대 등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 CVC의 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다. 우선 외부출자 한도를 50%로 상향 추진하고 있다. 실무에서는 둘 이상의 VC가 50대 50 비중으로 출자하여 공동으로 운용하는 공동펀드가 널리 활용되고 있으나, 지주회사 CVC는 외부출자 한도가 40%로 제한되기 때문에 공동펀드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를 보완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해외 우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CVC의 자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외투자 한도를 현행 20%에서 30%로 상향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주회사가 창업기획자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벤처기업은 창업 후 3년 정도가 지나면 자금 부족으로 도산 위기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상 '데스밸리(Death Vally)'라고 한다.
벤처기업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들은 가장 시급히 통과되어야 하는 법안으로 지주회사 투자규제 완화를 첫손에 꼽았다고 한다. 지주회사 CVC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신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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