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성폭행 피살' 엄마 잃은 꼬마…18년간 '사진' 넣고 다니다 검거한 형사

뉴스1

입력 2024.11.21 05:00

수정 2024.11.21 08:27

1998년 10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가정주부 성폭행 살해범 우우진을 18년간 잊지 않고 추적해 온 김응희 형사는 8000명의 DNA자료와 범인이 현장에 남긴 DNA를 대조한 끝에 범인으로 특정, 그의 집 부근에서 잠복했다. 이어 버린 쓰레기 봉투에서 찾은 담배꽁초로 DNA를 대조, '100%일치' 라는 결과통지를 받자 2016년 11월 11일 경기도 양주에서 오우진을 체포했다. (채널 E 갈무리) ⓒ 뉴스1
1998년 10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가정주부 성폭행 살해범 우우진을 18년간 잊지 않고 추적해 온 김응희 형사는 8000명의 DNA자료와 범인이 현장에 남긴 DNA를 대조한 끝에 범인으로 특정, 그의 집 부근에서 잠복했다. 이어 버린 쓰레기 봉투에서 찾은 담배꽁초로 DNA를 대조, '100%일치' 라는 결과통지를 받자 2016년 11월 11일 경기도 양주에서 오우진을 체포했다. (채널 E 갈무리) ⓒ 뉴스1


ⓒ News1 DB
ⓒ News1 DB


ⓒ News1 DB
ⓒ News1 DB


형사들이 2016년 11월 오우진을 18년전 사건현장으로 데려가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모습. (채널 A 갈무리)
형사들이 2016년 11월 오우진을 18년전 사건현장으로 데려가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모습. (채널 A 갈무리)


2016년 11월 28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주요 범인검거 특별승진 임용식'에서 18년 전인 1998년 서울 노원에서 발생한 가정주부 살해사건 범인을 검거한 유공경찰관 김응희 경감(경위에서 1계급 특진)에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경찰청 제공) 2016.11.28/뉴스1
2016년 11월 28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주요 범인검거 특별승진 임용식'에서 18년 전인 1998년 서울 노원에서 발생한 가정주부 살해사건 범인을 검거한 유공경찰관 김응희 경감(경위에서 1계급 특진)에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경찰청 제공) 2016.11.28/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6년 11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응희 경위는 18년 만에 검거한 '노원 가정주부 성폭행' 살해범 오우진(1972년생)을 강간과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송치했다.

김 경위는 18년간이나 자기 지갑 속에 갖고 다니던 오우진의 낡아빠진 사진을 버린 뒤 피해자 A 씨(1998년 10월 27일 살해 당시 35세) 유족을 찾아 '그 X를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어 어머니 살해 현장을 목격했던 A 씨의 딸 B 양(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 "정말 감사합니다"며 눈물로 인사하자 김 경위는 "충격이 컸을 텐데 훌륭한 어른으로 잘 자라줘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격려한 뒤 식사를 함께했다.

이 사건은 △ 피해자의 어린 딸이 눈에 밟힌 형사가 18년간 잊지 않고 사건 실마리를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범인을 검거했다는 점 △ 과학수사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점 △ 이 사건(강간 살인) 공소시효는 15년이지만 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을 경우 10년 연장된 덕을 톡톡히 봤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온몸 묶인 채 숨져있어…"아줌마 우리 엄마가"

1998년 10월 27일 오후 2시쯤 B 양은 친구들과 헤어져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기 아파트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응답이 없자 가지고 다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B 양은 엄마 A 씨가 안방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의가 벗겨지고 상의가 찢어진 A 씨 목은 노끈, 입과 발은 넥타이로 묶여 있었다.

놀란 B 양은 울면서 옆집으로 달려가 "우리 엄마가"라며 신고를 부탁했다.

강력반 막내 김응희 경장…"정말 처참, 반드시 잡겠다"

신고를 접수한 노원 경찰서 강력반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강력반 막내였던 김응희 경장(당시 34세)은 "사건 현장이 정말 처참했다"고 했다.

목을 감은 노끈을 얼마나 강하게 졸랐는지 목뼈가 부러졌고 얼굴에 울혈점까지 생겨났다.

경찰은 A 씨 몸에서 체액을 채취하고 범행 현장에 남긴 범인의 체모를 수거해 국과수에 맡겼다.

당시 DNA 검사로 남자, AB형 혈액형 두 단서만…ATM기에 찍힌 얼굴 사진

당시 DNA 분석은 성별, 혈액형 등 기초자료만 제공할 뿐이었다.

범인은 남자, 혈액형은 AB형으로 나타났다.

또 A 씨 집으로 그날 누군가 두차례 전화했지만 공중전화로 밝혀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A 씨의 신용카드로 누군가 10차례에 걸쳐 151만 원을 빼간 사실이 통보됐다.

이에 경찰은 은행 협조를 얻어 현금인출기(ATM)에 달린 CCTV에서 범인의 얼굴 사진을 확보,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당시 이 사건은 1998년 12월 2일 KBS프로그램 '공개수배 사건 25시'에도 소개돼 많은 제보가 들어왔지만 범인 윤곽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사건 2년 뒤 수사본부 해체…형사는 그놈 사진을 지갑에 늘 가지고 다녔다

노원경찰서는 수사역량을 총집결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는데 실패. 결국 2년 뒤인 2000년 11월 말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피해자 딸 B 양이 눈에 밟힌 김응희 형사는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며 ATM기에 찍힌 범인 사진을 자기 지갑에 넣어 두었다.

이후 지나가는 길에 비슷한 사람만 보이면 유심히 보는 버릇까지 생겼다.

18년 뒤 2016년 광수대에 부임한 형사…집념의 재수사

사건 당시 막내였던 김응희 형사는 2016년 1월 서울경찰서 광역수사대로 왔다. 그때는 막내가 아니라 경위로서 경륜이 쌓이고 어느 정도 재량권도 있었다.

김 형사는 1998년 확보한 DNA를 이용해 미제사건 해결에 돌입했다.

18년의 세월 동안 과학수사 기법도 발달해 DNA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고 무엇보다 DNA가 있을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된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강간살인 공소시효 2007년 12월 15년→25년 늘었지만 이전 사건은 종전대로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살인, 강간살인 등)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소급 적용 금지에 따라 이 사건 공소시효는 여전히 15년으로 2013년 10월 26일 자정, 공소시효를 넘겼다.

다행스럽게 2010년 4월 15일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DNA가 있는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토록 했기에 이 사건 공소시효는 2023년 10월 26일까지로 연장된 상태였다.

살인의 경우 2015년 7월 31일 태완이법으로 인해 공소시효가 폐지(단 2000년 7월 31일 이전에 발생한 건은 공소시효 15년)됐다.

범인 20대~30대 중반…전과자 8000명을 간추린 뒤 125명으로 압축

김응희 형사는 DNA감식결과 범인 나이가 20대~30대 중반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1965년~1975년생 동일수법 전과자들의 DNA데이터베이스를 살폈다.

그 결과 8000명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이들 중 AB형 등 다른 조건을 넣고 돌린 결과 125명까지 압축했다.

김 형사는 125명의 사진을 현미경을 보듯 대조한 끝에 마침내 용의자와 꼭 닮은 그를 찾아냈다.

김 형사는 오우진의 주소지를 검색한 결과 그가 경기 양주시의 모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따라 형사들을 잠복근무시켰다. 오우진의 DNA를 얻기 위해.

오우진이 버린 쓰레기봉투에서 건진 담배꽁초…DNA대조 결과 바로 그놈

김응희 경위는 동료와 함께 잠복근무하던 중 오우진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확인, 그가 집으로 돌아간 뒤 쓰레기봉투를 뒤져 담배꽁초를 찾아냈다.

이를 조심스럽게 담은 형사들은 국과수에 감정을 의회, 마침내 'DNA 100% 일치'라는 반가운 소식을 받아 들었다.

"당신을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한다"는 말에 "어 공소시효 지났는데"

2016년 11월 11일 서울 광수대는 지하 주차장에서 오우진을 "강간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는 통보와 함께 수갑을 채웠다.

당시 오우진은 "무슨 일이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경찰차에서 DNA감정결과를 보여주자 오우진은 "내가 한 일 맞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전셋집 알아보는 척 들어와

강도 전과자인 오우진은 생활정보지에 나온 '전세매물'을 보고 아파트 부근 상가 공중전화로 A 씨 집에 전화했다.

이어 1998년 10월 27일 오후 1시20분쯤 A 씨 집을 찾아가 "전세 보증금을 깎아 달라"고 했지만 A 씨가 거부하는데 격분,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오우진의 주장은 경찰, 검찰, 법원에 의해 엄벌을 피하기 위한 술책으로 간주됐다.

法 "강간 끝낼 때까지 목에 묶은 노끈 꽉…피해자 고통과 공포 속에 생 마감" 무기징역형

1심인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017년 4월 4일 선고공판에서 오우진이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 피해자에게 욕설하고 주먹과 발로 구타 △ 쓰러진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넥타이와 허리끈으로 손발과 입을 결박 △ 하의를 벗겨 강간 △ 피해자가 저항하자 가죽 허리띠로 피해자 목을 묶은 목 부위에 묶여 있던 노끈과 가죽 허리띠를 강하게 잡아당겼다며 이는 고의적인 강간 살인이 명확하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극도의 고통과 공포, 수치심 속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유족들도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하던 피해자의 딸은 어머니인 피해자가 손발이 결박당하고 목에 가죽 허리띠 등이 묶인 채로 숨져있는 것을 처음 발견, 그녀가 겪어왔을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러한 점들을 볼 때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수감생활을 통하여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속죄하도록 하는 것이 적정하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오우진은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집념의 김응희 형사, 경감으로 1계급 특진

피해자의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며 집념을 보인 끝에 오우진을 체포한 김응희 형사는 2016년 11월 18일 경감으로 1계급 특진됐다.


특진식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피해자와 유족의 원한을 풀어주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장기미제 살인사건은 증거수집 등 어려움이 많아도 끝까지 추적 및 검거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공을 치하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