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첫 역성장이다. 같은 기간 수출기업의 매출은 13.6% 증가했지만, 지난해 매출 감소(7.3%)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11월 기업경기동향조사(BSI)는 13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또 32개월 연속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부진은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가 98만6487명으로 전년(86만7292명) 대비 11만9195명 증가했다. 기업 실적도 마찬가지다. 2023년 국내 매출 10대 상장사의 순이익 합계는 28조1000억원으로 도요타의 순이익 41조9000억원을 크게 하회한다. 국내기업의 취약한 내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대 성장조차 버거워질 정도로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해진 것이다.
이처럼 엄중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야당은 지난 14일 이사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송이 남발되어 이사의 경영판단이 지체되고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M&A), 사업재편, 신산업 투자 등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
기업들의 걱정은 미국의 사례를 볼 때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합병 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일부 판례의 영향으로 대규모 합병에선 10건 중 7건에 대해 주주대표소송이 서너 건씩 제기된다. 대규모 합병에 대해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소송이 뒤따르는 셈이다. 이러한 소송들은 대부분 합의로 종결되는데, 이때 기업은 변호사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한다. 이와 같은 소송 관행이 업계에 만연해 있어 이를 'M&A 거래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는 일부 변호사의 배만 불릴 뿐이지 실제 주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서인지 대다수 상법 전문가도 야당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상법 교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대상의 62.6%가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포함한 상법 개정에 반대했고, 이 중 49.2%는 법 통과 시 소송 증가에 따른 경영위축을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기업과 치열하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정치권이 집중해야 할 정책의 우선순위는 다름 아닌 경제 살리기이다. 지금은 기업을 지원하고 규제를 개선해 경제를 살리는 데 모두가 매진해야 할 때다. 상법 개정이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기업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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