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소상공인 육성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한 소상공인은 "2027년까지 글로벌 백년소상공인 100개사를 발굴해 지원하겠다"는 중기부의 발표 내용을 듣고 양 대신 질에 집중해 달라며 이같이 요청했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도 곧바로 인정했다. 공무원들이 일을 하다 보면 '숫자'에 집중할 때가 많지만, 사실 질적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숫자 이야기를 하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어린 왕자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른들은 어떤 아이를 파악하기 위해 취향을 묻는 대신 아버지의 수입을 묻는다는 일침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아름다운 장미색 벽돌집을 봤다"고 말해도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한다. "10만프랑짜리 집을 봤다"고 설명해야 비로소 "정말 멋지겠구나"라며 감탄한다고 적혀 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통계는 모든 일의 기본이고, 양적 성장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향점은 숫자가 아니다. 탁상행정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중기부는 '백년가게'의 브랜드 인지도가 '미슐랭가이드'를 뛰어넘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미슐랭 하면 생각나는 맛집은 몇 군데 있지만 백년가게 대표 맛집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아마 중기부를 향해 질적 성장을 강조한 소상공인 또한 이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온누리상품권도 마찬가지다. 판매액은 역대 최대치인 4조2000억원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핵심 상권에선 가맹점 등록 비율이 높지 않아 무용지물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부정유통 문제도 터져 나오면서 정부는 부랴부랴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현장을 외면하고 역대 최대 판매, 최대 편성, 최대 할인 등 화려한 숫자에만 매몰되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숫자의 또 다른 함정은 개개인의 사정을 가린다는 데 있다.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올해 하락세를 유지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고금리에 결국 중소기업들이 제2, 제3 금융권으로 내몰리면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숫자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 자료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숫자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글로벌 백년소상공인 브랜드 100개를 채우기 위한 노력 못지않게 현장에서 나온 소상공인의 생생한 한마디에 귀 기울여 중기부의 정책이 중기·소상공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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