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1만명 시대에도...'소득기준'에 우는 비혼부모들
전문가들 "경제활동 불가능한 초기부터 지원해야"
전문가들 "경제활동 불가능한 초기부터 지원해야"
[파이낸셜뉴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30대 비혼모 서모씨(37)는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고차를 구매했지만, 오히려 차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차량가액이 500만원이 넘어 주민센터의 생활비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차량을 처분해야 할지, 적은 소득이더라도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지 서씨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비혼부모 복지가 확대되고 있으나,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소득과 자산 기준이 까다로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비혼부모는 더 증가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생계와 양육을 책임지는 비혼부모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임신 초기부터 시작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델 문가비와 배우 정우성의 비혼 출산 등 유명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까다로운 소득 기준, 굶주리는 비혼부모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혼 출생아는 1만900명이다.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이며 최초로 1만여명을 돌파했다.
비혼 출생아가 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비혼부모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한 비혼부모 지원 단체 관계자는 "최근 생활비 등 긴급 지원을 요청한 비혼부모가 전보다 많아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서씨의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를 ‘과도한 소득 및 자산 기준’에서 찾았다. 예컨대 20만원의 아동양육비, 의료급여 등 비혼부모가 복지급여를 받기 위해선 2024년 기준 중위소득 63% 이하여야만 한다. 2인 가족 기준 중위소득 63%는 230만원가량이다. 최저시급(9860원)을 월급으로 환산했을 때 206만740원인 것을 감안하면, 풀타임 아르바이트도 허락되지 않는 셈이다.
차량이 자산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문제다. 10년 이상의 2000cc 미만이며 차량 가액이 500만원 미만 등 조건을 갖춰야 복지급여를 준다. 도움을 받으려면 중고차도 구매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서씨는 10년 전 첫째를 낳았을 때에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출생 신고 이후 1년 간 받았던 생계급여 등이 최저임금 취직을 하자, 소득 기준을 넘겼다며 곧바로 지급을 끊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비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소득을 너무 따지다 보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홀로 부모 입장에선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공공부조 원리에 의해 소득 기준을 정해놓고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만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했다.
■경제활동 불가능한 초기부터 지원해야
비혼부모는 임신 기간과 출산 직후 경제적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기도 지원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혼부모 지원책이 우리나라 아동 보육 정책의 기준으로 복지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비혼부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취약하고 타격도 크기 때문에 지원을 폭넓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나마 현재 출신 직후 30여만원을 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돈으론 생계와 양육을 모두 짊어지긴 어렵다.
송지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개입”이라며 “의료급여, 생계급여 등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지원에도 방점을 찍었다. 지지 동반자 등을 연결시켜 비혼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송 교수는 “비혼부모 주변의 지지망을 튼튼하고 안전하게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임신 축하 지원금 지급, 예비 부모 수당, 출산 진료비 카드 확대 등의 정책적 제언도 있다. 임신 7개월부턴 일하기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예비 부모 수당 등을 통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월세, 공과금 등이 체납되면 아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예비 부모 수당과 임신 축하 지원금 등으로 비혼모들도 충분히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리온 한국가온한가족복지협회 대표도 "미혼모가 취업을 할 경우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줘 경제적 자립에 도움을 줘야 한다"며 "국가에서 지정은 물론 다른 교육기관도 인정해 자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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