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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즐긴 지 40년… 불멸의 스토리 향한 욕망도 함께 자랐다 [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1.28 17:36

수정 2024.11.28 17:36

박종진 연구소장이 전하는 만년필 탐심
만년필 탐심
박종진 / 틈새책방
만년필 탐심 박종진 / 틈새책방
만년필 탐심 박종진 / 틈새책방
집필을 위해 한창 고민하던 당시, 나의 관심은 만년필에서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만년필 자료'로 옮겨가고 있었다.

나는 전 세계 도처에 있는 만년필 자료를 모으려고 애썼다. 손바닥만한 카탈로그 한 장에 수십 달러를 지불했고 그 유명한 워터맨의 50주년 카탈로그 책자를 구입하느라 500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

핸드 프레스로 제작된 어느 책에 온 마음을 내주기도 했다. A4 정도 크기에 300쪽 분량의 그 책은 그림은 거의 없이 만년필 관련 특허로만 가득 찼는데, 특이하게도 책마다 일련번호가 있었다.
그 책이 출간된 지 3년 정도 됐을 때 소장하게 됐는데, 내 책의 번호는 51번이었다. 아마 100권 남짓 인쇄한 것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자, 만년필을 수집할 때 문득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결국 세상의 모든 만년필을 다 모을 수는 없어.' 어쩌면 내가 이토록 집착하는 만년필 자료라는 것도 똑같은 운명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래, 나만 갖고 있는 내 이야기를 써 보자.'

'만년필 탐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만년필을 즐긴 지 40년의 세월 동안 내가 만년필을 두고 느꼈던 두 마음, 그러니까 '욕망하려는 탐심(貪心)'과 '지독하게 살펴보려는 탐심(探心)'을 드러내고자 했다. 만년필을 욕망했던 경험, 치열하게 연구한 내용 중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의 이야기라도 그것을 풀어내는 작업은 꽤 힘들었다. 학창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아 인문적 소양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쓴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과 그의 자서전,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다시 읽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도 빼놓지 않았다.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작품들을 탐독하자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몽블랑 작가 시리즈의 첫 번째가 헤밍웨이 에디션인데, 왜 독일 회사가 미국 작가를 택했는지 그의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었다.

만년필의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 펜촉을 타고 잉크가 흐르는 것은 여전히 신기하고, 클립부터 펜촉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고, 매끄럽고 부드럽게 때론 서걱거리는 필기감까지 그 매력은 끝이 없다.

그러나 모든 만년필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만년필이 여섯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durability'. 내구성이다. 두 번째는 'instant'.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쓸 수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safety' 안전성이며 네 번째는 'beauty' 아름다워야 하고 다섯 번째는 'balance' 균형이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은 'story'. 즉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언급했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 듯하다. 명작은 이야기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만년필들은 역사 속에 이야기를 남겼고 그 덕분에 불멸이 되었다.

박종진 만년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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