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카드 할인까지 받으면 온열 매트가 인터넷보다 싸길래 6개월 만에 왔어요."
최근 서울 노원구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월계점에서 만난 소비자 최모씨는 제품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천장까지 물건이 가득 들어찬 창고형 매장인 이곳은 카트마다 물건을 가득 채운 고객들이 수두룩했다. 과일을 사러 온 임지원씨(51)는 "자주 사서 신선하게 먹고 싶지만, 슈퍼마켓은 소량이라 비싸서 부담스럽다"며 "두 식구인데도 한 번에 대량으로 사서 쟁여놓으려고 트레이더스에서 주로 장을 본다"고 말했다.
짠내 나는 '불황형 소비'는 이제 유통업계 전반을 이끄는 소비 흐름이다. 주로 교외에 위치한 창고형 할인매장은 평일에도 '저가 대량구매'를 선호하는 고객들로 붐빈다. 도심 속 초저가 매장인 다이소는 올해도 폭발적 성장으로 매출 4조원을 넘보며 '불황'의 최대 수혜를 입고 있다.
온라인보다 싼 창고형 매장 북적
1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가 운영하는 트레이더스는 불황형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대형마트와 달리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2조8946억원이던 매출은 2022년 3조3150억원으로 처음 3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3조3727억원으로 소폭 성장했다. 올 들어 3·4분기까지도 매출 2조71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 증가세를 보였다.
불황형 소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품목은 냉장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냉동제품이다. 올해 3·4분기까지 수입산 냉동돈육(+46%), 냉동 수산간편제품(+24%), 냉동과일(+19.9%)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모두 크게 늘었다. 외식 물가 상승으로 식당보다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회(+18%)나 푸드코트(+19%)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트레이더스를 찾은 고객들도 하나같이 '값싼 물건을 대량 구매하기 위해서'라는 반응이다.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해 본 뒤 구매하러 온 목적형 구매자들도 많았다. 온열매트를 사러 온 최씨는 "인터넷 최저가 기준 6만8000원인 매트가 여기선 5만9800원이더라"며 "온 김에 인터넷에서 본 핫딜 상품인 닭다리살과 세일 상품인 위스키도 한 병 구매했다"고 말했다.
'질보다는 가격 우선'..불황에 뜬 기업들
불황형 소비 바람을 타고 다이소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이소 홈플러스상봉점은 손꼽히는 다이소 대형 매장 중 하나로, 최대 5000원짜리 제품을 10만원치씩 대량 구매하는 고객들로 붐비기로 유명하다. 지난달 말 찾은 이 매장에는 비누통 같은 간단한 소모품부터 아이들 장난감, 화장품, 그릇까지 온갖 제품을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0만원의 예산'을 잡고 왔다는 김현지씨(33)는 "반찬통이 종류가 많고 저렴해 많이 샀다"며 "소모품은 몇 달에 한 번씩 다이소에 와서 왕창 산다"고 말했다. 이덕미씨(49)는 "발열내의는 다른 SPA 브랜드에선 1만원이 훌쩍 넘는데, 다이소에선 5000원이면 살 수 있다"며 "워낙 저렴하니 '추우면 하나 더 껴입자'는 생각으로 다이소를 먼저 찾게 된다"고 전했다.
최대 5000원짜리 화장품을 파는 '다이소 뷰티'는 불황형 소비를 등에 업고 뷰티업계 주류로 자리 잡았다. 다이소 뷰티는 매달 입점하는 신규 브랜드만 20여개 수준이다. 운영 브랜드는 53개에 달한다. 고객 김하민씨(22)는 "올리브영에서 3만원에 파는 제품을 5000원에 살 수 있어서 다이소 화장품을 자주 쓴다"며 "다이소는 워낙 저렴하다 보니 쇼핑 예산을 따로 계획하고 오지 않아도 편하게 쇼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초저가 전략을 앞세운 C커머스 이용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유해 물질이 검출되는 등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불황에 품질을 포기하더라도 저가 구매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앱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알리 904만명, 테무 679만명으로 전달인 9월과 비교해 각각 3.4%, 3.3%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 장기화로 '값싼 가격'을 내 건 저가 마케팅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라며 "경기가 풀릴 기미가 없어 한동안 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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