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임모씨(22)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에서 옆자리의 불씨를 빌리며 이같이 말했다. 임씨는 평소에 취업 준비 때문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이번 가을부터 휴학했지만, 이력서에 이력 1줄 넣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임씨는 "취업에 필수 스펙이라고 하는 영어점수,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산다. 그런데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다"며 "대기업에서는 채용 공고 계획을 줄인다고 하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물건이 안 팔려 고생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을 나라 경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4일 오후 6시께부터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4년 만에 촛불이 등장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지난 3일 발생한 계엄령의 선포에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촛불을 들었다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의 퇴진 이후 정국은 불투명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계엄령 선포, 선 넘었지"
이날 본지 기자가 찾은 집회장에는 시민들이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부터 코리아나호텔 앞 인도를 가득 메웠다. 도로원표가 있는 작은 공원에도 시민들이 발 디딜 틈 없었다. 집회 참석자의 연령대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참석자들은 지난 3일의 계엄령 선포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집회에 참석한 이모씨(18)는 "수능도 끝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살짝 긴장감이 풀리던 찰나 어제 계엄령이 선포 뉴스 보면서 정신이 반짝 들었다"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걱정돼서 왔다"고 말했다.
대학교 휴학생 백모씨(21)은 살면서 처음 집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집회하면 과격한 이미지가 떠올라 집회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 참여하길 꺼렸는데, 어제의 일을 겪고 화가 치밀어 올라 오늘 집회에 왔다"며 "대통령이 왜 계엄령을 선포했는지 공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초등학교에서 과학실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박모씨(49)는 "윤석열 정권이 어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을 보고 '제5공화국'이 떠올랐다"며 "이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면 나라가 풍비박산 날 것 같아 오늘 집회에 참석했다. 사실 오늘 친구랑 술 약속이 있었는데, 술 대신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모씨는 기말고사 준비를 뒤로하고 이곳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예고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도 모자라 군과 경찰이 국회를 점령하고 국회의원들의 원내 출입을 막은 것에 나무나도 충격을 받았다"며 "집에서 가만히 소식을 기다릴 수 없어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보려고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주최 측인 민주노총은 이번 집회에 이날 오후 7시 기준 1만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범법자 윤석열은 대통령 행위를 중단하라. 죄인 윤석열은 대통령실 무단점거를 중단하라"며 "한국 사회는 여러분처럼 저항하고 맞서고 싸우고 투쟁했던 사람들 힘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대표는 "윤 대통령은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의혹과 수사를 회피하기 위해 계엄령이란 수단을 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탈했다"며 "역사를 부정하고 국민과 헌법을 우롱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참으로 극악무도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 8시부터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했다. 민주노총은 경찰과 협의해 차도 2개를 행진용으로 확보했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윤석열은 퇴진하라, 윤석열을 체포하라"와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자", "지금 당장 끌어내자 더는 못 참겠다" 등을 외쳤다.
이날 집회는 서울 광화문 일대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지역별로는 △대전 은하수네거리 △강원 춘천 거두사거리 △광주 5.18 민주광장 △경남 창원시청 △충남 천안터미널 △전남 목포 평화광장 △부산 서면 태화 △울산 롯데백화점 △충북 충북도청 △대구 대구 CGV한일 앞 등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7일 '내란범 윤석열 즉각 퇴진 민주노총 행진' 등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지속적인 촛불행동을 할 계획이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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