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기울어진 운동장에 갇힌 유료방송 혁신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05 19:27

수정 2024.12.05 20:00

장민권 정보미디어부
장민권 정보미디어부
"사실상 거의 모든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상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요즘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올해처럼 힘든 때가 없다"는 말이다. 주력인 방송사업 매출 하락은 당연하게 여겨진 지 오래다. 이용자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눈을 돌리면서 유료방송 가입자 감소세는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올해 유료방송업계에 불었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바람도 비용 절감 목적이 컸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제작비를 급격히 끌어올려 양질의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 제작 비중을 늘려 콘텐츠 사용료 부담을 낮추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마저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는 만들지 못한다. 스타를 쓰지 않는 소규모 또는 지역밀착형 예능이 대다수다. 시청률도 당연히 높지 않다.

유료방송업계가 느끼는 생존에 대한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최근 KT스카이라이프, LG헬로비전, HCN 등 주요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포츠중계, 지역·문화·관광사업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기까지 갈 길이 멀다. 한 케이블TV업계 관계자의 "우리는 매해가 위기"라는 하소연도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유료방송업계가 고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OTT와 공정하게 경쟁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OTT,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성장률이 급격히 올라가는데도, 전통적 유료방송은 낡은 규제들에 발이 묶인 상태다. 가령 OTT가 제작한 콘텐츠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 분류만 받으면 되는 반면, 유료방송은 사전 자율규제와 사후 법적규제 대상이 된다. OTT에서는 흡연 장면이 버젓이 나오지만, 방송법을 적용받는 유료방송은 이를 보여줄 수 없다. 유튜브에선 각종 주류 광고가 쏟아지고 있지만, 음주 조장을 사유로 유료방송에선 도수 17도 이상 주류 광고가 금지돼 있다. 콘텐츠 제작비가 올라도 이를 요금제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방송법 등에 막혀 통신·방송 상품과 결합된 요금제를 출시하기 위해선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넷플릭스가 광고형 구독형 상품을 출시하고, 구독료도 자율로 올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 방송 규제 체계는 유료방송에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유료방송 경쟁력을 살릴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할 때다.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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