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내년 여름에 또 한국으로 여행 올 계획이었는데, 이런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 다시 고민해 볼 것 같아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흘이 지난 6일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는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30대 일본인 관광객은 올리브영 매장에서 화장품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영어, 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가 들리는 이곳 매장은 여전히 외국인들로 붐볐지만, 성수동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현재 상황을 훨씬 더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또 다른 싱가포르인 관광객도 "계엄이 금방 해지돼 다행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행하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언제든 무력시위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시위하는 곳을 피해서 다닐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행 위험국 될라'..호텔업계, 초비상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유통업계가 긴장감 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휴전국인 한국에서 계엄령이 외국인들에게 주는 공포감은 내국인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변수다. 주요 관광명소가 많은 도심을 중심으로 집회가 확산하면 유통업계 전반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데다 한국이 졸지에 여행 위험 국가로 잇달아 지정되면서 한국 관광 수요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뷰티·패션업계는 내수침체 속에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외국인 매출이 타격을 받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 명동은 비상계엄이 없었던 듯 거리를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아 보였다. 그러나, 명동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여행이 '위험하다'는 인식은 퍼져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큰 매장 중 하나인 다이소 명동역점에서 만난 20대 일본인 관광객은 "계엄 선포 사태 직후인 지난 4일 서울에 왔는데 여동생이 걱정을 많이 했다"며 "시위가 길어지면 한동안 여행 오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호텔업계다. 자칫 계엄령 사태로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한국 관광 수요가 위축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령 선포 당시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서울 특급 호텔을 중심으로 많은 문의와 일부 조기 퇴실 사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사태로 한국을 여행 위험지역으로 분류하는 국가가 많아지면 업황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서울 시내 5성급 호텔 관계자는 "비상계엄 선포가 밤늦은 시간에 예고 없이 일어난 만큼 외국인 투숙객 중 이를 인지한 인원 자체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예약 취소는 거의 없었다"면서도 "고객 한팀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급히 불러달라고 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보다는 향후 여행이나 방문을 계획 중인 잠재 고객들이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는 다음 달부터 반영될 것"이라면서 "정치적 혼란 상황이 길어진다면 업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탄핵 정국 시위로 '상권 침체' 우려
외국인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히는 '올무다(올리브영·무신사·다이소)'도 당장 계엄령이나 탄핵정국으로 인한 영향은 크지 않다면서도 장기적인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외국인 관광객 비중 높은 명소에 있는 매장에는 객수나 매출 면에서 전혀 영향이 없다"면서도 "한국을 '여행위험 국가'로 지정하는 국가가 늘면 외국인 관광객이 전반적으로 줄고 상권이 위축되면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업황 부진으로 어려운 면세업계는 '설상가상'인 상황에 속앓이하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워낙 부진한 상황이어서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다"면서도 "수익성 부진을 탈피하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을 기피할 만한 일이 생겨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다.
탄핵 관련 시위로 내수가 더욱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대규모 시위는 광화문, 남대문, 국회 등 도심에서 이뤄져 교통이 통제되면 유동인구가 줄고, 연계된 유통시설인 호텔, 백화점, 면세점 등 상업시설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며 "당장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노유정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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