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당해 임신한 애를
대체 누가 낳으라 하겠나
편견·낙인찍기 이제 그만
대체 누가 낳으라 하겠나
편견·낙인찍기 이제 그만
#2. 은수연 작가가 생각났다. 필자가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시절, 성폭력 예방강사로 특별초빙한 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2012)'라는 성폭력 고발서를 썼다.
은 작가는 목사인 아버지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간 성폭력, 가족폭력, 임신과 낙태. 탈출과 감금을 반복했던, 친족 성폭력 생존자다. 성폭력 피해자다. "너 오늘 맛 좀 봐라." "나는 순간 오줌을 쌌다. 거실에 흥건히 오줌을 싸버렸다…. 허리띠로는 맞고 싶지 않았다. 20년 넘게 매를 맞은 엄마도 (아버지가) 허리띠만 풀면 기절할 듯 무서워하는 것을 봤다." "소리 지르지 마. 더 세게 때린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은 작가의 고발로 아버지는 7년형. 은 작가는 7년 후가 '겁이 난다'며 떨었다. 7년이 지났는데, 잘살고 있을까?
#3. 2014년 11월 25일, 통영 티켓다방 여성이 성매매 단속을 피해 모텔 6층에서 추락, 사망했다. 1990년생으로 열일곱에 임신. 3년 후 남자에게 버림받았다. 미성년자라 혼인신고도 못했다.
2011년 세살짜리 딸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고향 충청도에서 먼 통영으로 갔다. 전세방 등 천만원 사채 빚을 일수 찍어가며 버텼다. 2013년엔 어린 딸을 상속인으로 지정해 매달 생명보험 12만8129원, 어린이 무배당보험 2910원씩 1년6개월을 부었다. 죽음 후 남겨진 사채 빚은 터무니없는 액수, 눈 오는 날 만난 여성의 아버지는 장애인." "(아이) 친부는 연락도 안 되고, 친권이 없어 보험금도 찾을 수 없고,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며 우셨다. 아! 그때 뵌 외할아버지와 어린 손녀는 어떻게 됐을까?
#4.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 기간 중, 진중권씨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필자는 2012년 인권학자 김형완씨와 진행한 '시사인권' 프로에서 "임신을 원치 않았지만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갔거나, 강간을 당했거나 어떤 경우라도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사회적·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관용)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발언은 진씨에 의해 "강간을 당했을 때는 낙태를 불법으로 한 나라에서도 예외적으로 (낙태를) 인정하거든요, 그런데 (강간당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저분에게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여성의 권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이에요, 저런 분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로 둔갑됐다. 진씨의 발언은 공중파 방송을 포함해 수많은 매체가 받았고, SNS를 통해 일파만파로 번졌다. 필자의 60년 인생은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대체 어떤 여성이 강간당해 임신한 아이를 낳으라고 하겠는가.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했다. 2018년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캠프촌을 방문했다. 인종청소를 위해 미얀마인들에게 집단 성폭력을 당한 로힝야족 여성들의 출산을 부락의 최고 연장자인 촌장이 돌보고 있었다. 미혼모 보호시설 애란원에는 이런저런 사연의 10대 미혼모들이 있다. 그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말. "가장 무서운 것은 돈, 제도가 아니에요. 편견이에요. 낙인 찍기예요. 더러운 여자라는, 후레자식이라는."
김행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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