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직전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미상정한 2차 개정안에는 양곡시장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목적으로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정부 주무부처의 역할을 제한코자 하여 문제가 됐었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차 개정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곡 매입가격, 방법, 규모 등을 사전에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시장가격이 평년 가격(이른바 공정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급하는 '양곡가격 안정제도'가 추가됐다.
이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아야 하는 정부의 손발은 묶고, 쌀 생산자는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얻도록 하고, 유통가공업자가 정부와 생산자 사이에서 잘 활약해서 이익을 얻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런 세 차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전체 농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쌀 생산농가의 소득보전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국제협약을 준수해야 하는 현실에서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적 주장이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도 쌀 가격 결정과 농가소득 보전을 정책적으로 분리(Decoupled)해야 한다. 말하자면 직불제로 농가소득은 보전해 주되, 농산물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직불제 중심의 농정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농산물 시장가격을 낮추어 국민생활 안정에도 기여하고, 농가소득도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농가의 시장대응 능력을 강화해 농업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었다.
EU를 참고해서 우리도 2005년부터 쌀 수매제도를 폐지하고 쌀 직불제를 도입했다. 농산물 가격이 다소 하락하더라도 직불금으로 농가소득은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통계상으로도 2000년 쌀 가격이 20㎏에 16만1270원인데 2022년엔 18만7268원 정도였고, 따라서 2020년 쌀 농업소득도 991.73㎡당 73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부가 2005년부터 직불금으로 1만㎡당 100만원을 지급하다가 2021년부터 170만원으로 증액했고 소농직불제도 도입해 991.73㎡ 이상 경작자에게 연간 최소 120만원을 지급했다. 쌀 농업소득의 1.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만약 여기서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싶으면 농가가 다른 수익 좋은 작목으로 전환하면 된다. 수익률이 좋지 않은 쌀 생산을 지속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양곡관리법이 적용되면 쌀 생산자는 다른 작목을 재배할 유인이 사라진다.
직불제를 제대로 적용해서 농가소득 보상과 가격결정이 분리되면 쌀 생산자들이 자율적으로 다른 작목으로 전환해서 쌀 생산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졌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양곡관리법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2005년에 쌀 고정직불제와 더불어 쌀 변동직불제를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직불제는 이상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쌀 목표가격 대비 시장가격이 하락하면 그 차액의 85%를 보상하는 '변동직불제'로 인해 쌀 생산이 많아져서 가격이 떨어져도 쌀 농가는 또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시장과 정책변화에 민감한 농민들은 쌀 생산에서 떠나지 않게 되고 현재와 같은 쌀을 과잉생산하는 농업구조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지속하게 하려는 법안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목적에 국민과 농민 그리고 농업의 미래가 휘둘리는,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시장 수요를 초과하는 쌀을 생산하도록 장려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을 경시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이 실제로 적용된다면 향후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김태연 단국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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