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서초포럼] 쓰레기통과 화장실의 뒤바뀐 운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10 18:35

수정 2024.12.10 19:46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거의 없으며, 그런데도 거리가 깨끗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반면 잘 관리된 공중화장실이 곳곳에 있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고 한다. 실제로 해외 선진국들을 다녀 보면 거리에서 쓰레기통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고 간혹 있더라도 유료라서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당황하고 우리들은 외국 거리에 화장실이 없어서 당황한다.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

우리나라도 1980년대까지는 쓰레기통은 흔하고 공중화장실은 귀했다.
버스정류소 같은 공공장소에는 항상 재떨이 달린 쓰레기통들이 비치되어 있었고 가정에서도 음식쓰레기, 재활용 구분 없이 아무 봉지에나 담아서 쓰레기 수거장소에 던져 놓으면 됐다. 그렇게 쌓인 쓰레기는 정부에서 부지런히 수거해 갔다. 한마디로 쓰레기 수거는 완벽한 공공재였던 것이다. 반면 공중화장실은 부족해서 노상방뇨 문제가 작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뒷골목 담벼락마다 가위 그림과 함께 '소변금지'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 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볼일은 자기 집에서 각자 해결해야 하는 사유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우리는 공짜 쓰레기 수거를 과감히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를 도입해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재활용 및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제도까지 도입하면서 쓰레기 내용에 따라 비용을 차등부과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쓰레기 수거를 공공재에서 사유재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거리 쓰레기통을 퇴출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까지 쓰레기 봉투나 스티커 판매수입이 전체 쓰레기 처리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공공재적 성격이 많이 남아 있지만, 최소한 쓰레기 처리가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이 정착하게 됐고 그 결과 쓰레기가 줄어들고 재활용 비율이 높아져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정부이지만, 그 취지를 이해하고 적극 협조한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이 없었다면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쓰레기를 몰래 버리지 않고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여야만 성공할 수 있는 제도다. 쓰레기 수거비용을 너무 급격히 올릴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공중화장실도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해 쓰레기 수거처럼 유료화하는 게 더 선진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쓰레기와 화장실은 차이가 있다. 우선 화장실 이용은 그 수요가 전 국민 사이에 거의 유사하다. 빈부나 남녀노소의 차이에 따라 화장실 이용 정도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 국민이 공평하게 공중화장실의 편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 혜택이 편중되는 일이 없다. 또한 공중화장실 이용에 비용을 부과한다고 해서 그 수요가 변하지도 않는다. 생리현상이기 때문에 총량에는 어차피 변화가 없고, 공중화장실이 무료라고 굳이 집 밖에서 일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공중화장실에 비용을 부과할 때 노상방뇨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면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그 사회적 피해가 막대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공중화장실은 공공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는 국민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성공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해외 언론들은 우리나라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는 우리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정책의 취지에 공감할 때 비록 어려운 일이라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따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시행되는 정책은 표를 의식해서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며 주저하거나 반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