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화마 휩쓴 한국
개헌 등 정국 수습책 절실
노트르담 교훈 참고할 만
개헌 등 정국 수습책 절실
노트르담 교훈 참고할 만
지금 많은 국민은 불타는 노트르담성당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꿈에도 생각 못한 '비상계엄'이라는 불이 대한민국 전체에 옮아 붙고 있다. 한국 소식을 전하는 외신을 보면 혼란(turmoil), 혼돈(chaos) 등이 많이 들린다. 가장 뼈아픈 건 잘 나가던 K이미지가 졸지에 40년 전으로 후퇴한 것이다. K팝과 영화, 드라마에 이어 노벨 문학상까지. 공개도 안 한 '오징어게임 2'가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다. K뷰티, K푸드, 심지어 K방산도. K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다. K정치는 모든 걸 하루아침에 박살 내 버렸다. 자해, 자폭을 넘어 방화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상황은 너무 급박하다. 야당은 '될 때까지' 탄핵 강행을 공언한다. 정부와 여당은 '질서 있는 퇴진' 로드맵과 시간표를 제시하지 못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권한행사 정지를 발표했다가 위헌 시비만 일으켰다. 아무리 급해도 비상계엄에 이은 또 다른 위헌적 권한행사는 안될 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여권 일각의 속내는 이해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불을 보듯 뻔한 결과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에 적합한 다른 방안을 생각하기 어렵다면 '탄핵 후 정국수습'을 택하는 게 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야말로 개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라고 생각한다. 역대 정권은 거의 모두 개헌을 약속했다. 국회 개헌특위의 개헌안도 있다. 2018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 주도로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된 바 있다. 지금의 야당들도 임기단축 개헌을 주장해 왔다. 물론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을 거부할 것이다. 대통령직이 눈앞에 있고, 단숨에 사법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데 당연지사다. 하지만 크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개헌을 얘기한 게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대통령 될 생각으로만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탄핵 후 헌재 결정 시까지 진지한 개헌 협상을 약속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18년 개헌안 제74조는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만 한 번 중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밖에 대통령 권한행사와 중지에 관한 상황을 명확히 한 점도 눈에 띈다. 기존의 여러 개헌안을 검토하고 조금만 조정하면 개헌안 마련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제 등 권력구조 문제도 있지만, 대선·총선·지방선거를 각각 치르는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멸망 원인 중 하나로 '공공심의 쇠퇴'를 들고 있다. 대농장주이기도 한 로마 원로원의원들은 전쟁 시 자신의 농노를 이끌고 국가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시간이 흐르며 원로원의원들은 농노 차출은 물론 돈으로 대신 내는 것도 거부하고 나섰다. 지배층의 이기주의가 결국 국가 소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것이 말기 증세의 하나라고 시오노는 보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개인과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지도층의 공공심이 건강한 국가의 첩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 국무부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를 두고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노트르담성당 재개관식을 보도한 언론들은 "숯덩이를 예술로 만들어 낸 프랑스"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층 정치인들의 공공심과 애국심에 호소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보여주고 숯덩이를 예술로 만드는 가능성의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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