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주주 입맛 맞추기 힘들다" 日 상장폐지 기업 11년만에 최대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16 12:03

수정 2024.12.16 12:03

2024년 94개 기업 상폐, 2013년 이후 최다
상장사에 대한 시장 압력
사모펀드 요구 등도 거세
일본 상장폐지와 관련해 챗 GPT가 만든 이미지. 챗GPT 제공
일본 상장폐지와 관련해 챗 GPT가 만든 이미지. 챗GPT 제공

【도쿄=김경민 특파원】 올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하는 기업 수가 11년 만에 가장 많은 90여곳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부담으로 인식한 기업들이 잇따라 자진 상폐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도쿄거래소의 프라임, 스탠더드, 그로시 주식시장에서 올해 상장 폐지되는 기업은 2013년 이후 최다인 94곳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54% 증가하는 수준이다.

상폐 사례가 증가하면서 연말 기준 도쿄거래소 상장 기업 수는 지난해보다 1개 감소한 3842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거래소가 2013년 오사카증권거래소와 통합해 현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상장기업 수가 줄어드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도쿄거래소 상장사 수는 연평균 40여곳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올해부터 증가세가 꺾인 것이다.

닛케이는 상폐가 증가하는 것과 관련 "경영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 자진해서 증시에서 철수하거나 다른 회사나 투자 펀드에 인수된 회사가 많다"며 "도쿄거래소는 상장 기준을 엄격히 하고 기업 측에 주가를 의식해 경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의 무리한 요구도 빗발치면서 상장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기업설명(IR)일본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 건수는 66건으로, 지난해 전체 주주제안 건수(71건)에 육박했다.

또한 도쿄거래소는 상장사 수보다 질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 중이다. 내년 3월부터 기업은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시총 등의 기준 달성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주가 부진이 계속되는 기업은 퇴출시킨다는 게 도쿄거래소의 새 방침이다.

닛케이는 내년에도 상폐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대어급으로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유통업체 세븐&아이홀딩스(시가총액 6조5200억엔)가 캐나다 유통 업체 ACT의 자사 인수를 막기 위해 주식공개매수(TOB)를 통해 주식을 사들여 상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장사 수 감소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상장 비용이 증가하고 상장하지 않아도 자금 조달이 쉬운 환경이 갖춰진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9월 기준 미국 상장사 수는 약 4000여개로 2000년 말에 비해 약 40%(2800개) 감소했다.
유럽에서도 상장사 수는 11년 전 약 1만5000개에서 현재 약 8000개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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