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감 속에 열렸지만 긴급 F4 회의(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결론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였다. 위기 땐 단번에, 선제적이고, 결정적으로 시장 불안심리를 제압하지 못하면 역으로 당한다. 외환위기(IMF 관리체제), 글로벌 경제위기에 맞섰던 선배 경제관료들이 남긴 교훈을 따랐다.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부 차관, 글로벌 위기 때 기재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전 장관은 최근 발간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에서 "위기대책은 시장이 깜짝 놀랄 대응책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경험은 역시 값졌다.
F4 회의는 주말도 없이 매일 개최되고 있다. 시장은 회의를 주목했고 안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 부총리, 이 총재는 특히 대외 신인도 관리에 집중해 왔다. 최 부총리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 한·캐나다 경제안보포럼 등에서 1조달러에 육박하는 순대외금융자산, 41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 등 대응여력을 설명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와 컨퍼런스콜도 했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도 피했다. 여기에다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는 불확실성 해소에 가속도를 붙였다.
F4 회의의 선방에도 한계 또한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를 위기로 몰았던 과거 사례들은 해외 요인 영향이 컸다. 외환위기는 기업의 과다 부채 등 국내 문제도 있었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달러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글로벌 경제위기 발원지는 미국이었다. 이번은 다르다. 트럼프 2기 출범이란 통상환경 급변도 변수였지만 온전히 국내 요인 탓이다. 사실상 선진국에 진입한 경제에 정치의 난맥상이 발목을 잡았다. 대외심리는 안정시킨다고 해도 냉랭한 경제심리는 누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내수침체 골이 깊다는 진단은 비상계엄 이전에도 대세였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도 소비심리는 얼어붙었다는 게 통계지표로 확인된다. 이번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만 해도 반도체 경기는 상승세였고, 대외여건은 괜찮았다. 지금은 미국 무역정책 불확실성에다 중국 경기부진으로 수출마저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더 커졌다"고 전망하는 근거들이다.
경제 체제가 정치와 분리돼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판단, 비상계엄 수사 진행은 정치·사회 영역이다. 1442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안팎까지 떨어지면 내수 불확실성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F4 회의의 한계를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한 '관리형' 정부가 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등을 '긴급'하게 여는 모습이지만 국무위원 절반 이상이 비상계엄 수사선상에 오른 정부로서는 피부에 와닿는 결과를 내놓기 힘들다.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벌써 정권을 잡은 듯한 야당의 조급함을 경계한다. '탄핵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여당의 자중지란도 우려스럽다. 여야정 합의 결과물이 이른 시간 내에 나와야 한다. 반도체법, 전력망법 합의도 좋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핵심으로 한 민생정책방안도 상관없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경제와 시장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은 여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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