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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국가역량 고도화의 기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18 18:08

수정 2024.12.18 18:24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국가위기 상황이지만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 모두의 회복탄력 에너지를 모아 대한민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지혜를 보태야 할 시점이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국정 추진체계와 정부 능력의 한계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정치제도 전환과 함께 세대 간 불공정한 사회보험제도, 만성화된 청년실업, 그리고 자영업자와 기업들의 좌절감 등 저성장 함정에 빠져 있는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과제는 적대적인 여야 정치권을 넘어 국민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와 정부 능력에 대한 신뢰가 높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정부가 민간보다 더 공익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기에 정의롭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부가 미래산업과 차세대 먹거리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고, 중소기업과 농업 등 산업을 보호·육성해야 하며,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종국적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에게 정부는 선한 조직이고 만능의 존재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정치인들은 거창한 국익과 민생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정치생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공무원들도 나랏일을 하고 상대적으로 의미 있는 공무를 수행하지만 그들도 개인적으로는 승진과 좋은 보직, 그리고 퇴직 이후의 윤택한 생활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월급쟁이들이다. 정치개혁이나 공직 인사시스템 등 행정·재정 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자, 이러한 속살을 인정하고 국가역량에 접근하게 되면 지금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민간은 사익을 추구하므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정부는 공익을 추구하므로 보다 넓은 영역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순진한 사고가 결국 오늘날의 국가 실패와 엄청난 국민 부담을 가져왔다. 정부와 민간의 경계는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일하는 방식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국가역량 제고라는 거대한 담론도 결국은 대한민국의 현장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 민간이 큰 시장을 찾아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제도를 수요자 입장에서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공정거래나 환경관련 적정 규제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자유롭게 경제행위를 할 수 있도록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때 뒤처지는 계층(타깃그룹)에 대해서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마련, 두텁고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조돼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법과 규제란 지켜지는 것을 전제하므로 정해진 조건은 반드시 순응을 확보하기 위해 엄정한 집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받는 정부가 요구된다. 국가역량 제고는 국민의 동참과 자발적 순응을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국가역량은 공무원의 역량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 그리고 기업의 역량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일깨워주는 시점이다. 국격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정치경제 역량, 안보 역량, 사회문화 역량이다.
지금은 사회적 대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정치난제, 정책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역량을 키우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져야 한다.

한 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경제체질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 요건은 건전한 윤리관에 입각한 사회기강 확립, 국민들의 경제 하려는 의지, 기업가정신과 창조적 혁신에 대한 공감, 기술과 지식의 끊임없는 축적, 그리고 근면·절약·저축하는 기풍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을 갖춘 나라, 함께 잘사는 사회, 국가역량이 높은 나라로 전환하는 기회로 만들자. 우리나라는 금 모으기 등 국민의 동참을 통해 외환위기도 극복한, 저력 있는 국가라는 점을 상기하자.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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