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손님이 있는 자리는 반이 겨우 넘어 보였다. 그나마 외국인 손님은 서너명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매니저는 "계엄 사태 때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는 계엄 사태 일주일 뒤부터 외국인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사실 비상계엄은 50대인 필자에게도 낯설고 형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수년 전 독일 베를린 출장을 갔다가 시리아 난민 관련 대규모 시위를 목격했지만 그저 '그들의 일'로 치부했다.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는 근거 없는 안도감과 무관심이었을 게다. 어쨌든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외국인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중무장한 군인들과 시민들이 엉킨 그날의 현장은 외국인들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내국인 소비도 직격을 당했다. 자주 가는 회사 인근의 복집 주인은 "첫 탄핵 의결이 있던 지난 7일 주말은 영업 이래 가장 손님이 없었다"고 했다. 강남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도 이러니 자영업자들의 타격은 짐작이 안 된다.
오랫동안 씨를 뿌렸던 K컬처의 결실이 K관광과 K쇼핑으로 이어지던 분위기에 찬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날의 여파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내수시장을 덮친 것이다.
따뜻한 겨울에 연말 특수가 사라진 내수업계는 탄핵정국까지 겹쳐 망연자실이다. 통계청이 공개한 올해 3·4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으로, 지난해 3·4분기보다 1.9% 하락했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인 10분기 연속 감소세다. 내수의 근간인 소비 침체가 언제 회복될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이다. 정치지형을 떠나 이번 사태가 2주 만에 일단락된 건 응급상황이던 내수경기에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경제가 대내외적 변수로 1%대 저성장이 뉴노멀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반면 내수경기를 좌우하는 물가는 고공행진이다. 정부가 식품 가격이나 통신비, 기름값 등을 억눌러서 겨우 막는 형국이다. 경제의 두 수레바퀴인 수출과 내수는 모두 위태롭다. 올해 수출은 그나마 쌍두마차인 반도체와 자동차로 버텼지만, 내수는 딱히 답이 안 보인다. 물가가 오르면 가처분소득 악화로 소비부터 줄인다. 요즘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늘리는 알뜰족을 많이 본다.
소비가 줄면 기업은 생산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생산 감축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경제의 악순환 고리 한복판에 한국 경제가 있다. 그나마 수출에 비해 통제성이 높은 게 내수다. 아무래도 대외여건보다는 국내 상황에 국가시스템의 개입이 쉽지 않겠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내수 살리기가 지금은 최우선의 국정과제가 돼야 한다. 모든 국가적 역량을 실물경제 회복에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크게는 금리인하, 조기 추경 등 재정지출 확대를 동원해야 한다. 정쟁에 매몰됐던 정치권도 필사즉생의 각오로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경제상황은 IMF 관리체제(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불확실성의 시기라고 본다. 금니, 돌반지까지 모아서 외환보유고 안정에 혼연일체가 됐던 기억을 되살려야 할 때다. 여야는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기관과 수사기관에 일임하고, 오롯이 경제에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국회에 앉아 삿대질과 고성으로 시간을 보낼 바에야 단체로 국회 앞 백반집을 찾아가 매출을 올려주는 퍼포먼스라도 하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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