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하급심 판결 파기 후 직접 판결… "인당 10만 원씩 위자료 지급"
장애인 접근권 헌법상 기본권 최초 명시…"행정입법에 대한 사법통제 가능성"
장애인 접근권 헌법상 기본권 최초 명시…"행정입법에 대한 사법통제 가능성"
[파이낸셜뉴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아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됐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19일 A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정부가 장애인인 원고 2명에게 각각 1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직접 명령했다.
판결은 파기자판 방식으로 이뤄졌다.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대법원이 직접 최종 결론을 내리는 절차다.
대법원은 정부가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입법 개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정부의 입법 미비로 인해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평등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며 "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국가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행위를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위법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였다.
지체장애인인 A씨 등은 지난 2018년 국가가 약 20년간 옛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의 접근권이 침해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옛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편의점 등 소규모 소매점은 바닥면적 합계 300㎡ 이상일 때만 경사로를 비롯한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의 약 97%가 장애인 편의제공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당 시행령은 24년간 개정되지 않다가 2022년에야 ‘바닥면적 50㎡ 이상’으로 변경됐다.
대법원은 현재 관련 시행령 대부분 소규모 소매점에 대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이를 24년 넘게 개정하지 않은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라고 판단했다. 또 이 과정에서 국가배상법에 위배되는 고의와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목적 및 내용에서 현저하게 벗어나 합리성을 잃었다"며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1, 2심 재판부는 시행령 미개정이 위법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장애인 접근권이 헌법상 기본권임을 최초로 명시한 데 의미가 크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 직후 "이 판결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를 미흡하게 보장하는 행정입법에 대해 법원이 사법통제를 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장애인의 권리가 법원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길을 열었줬다"고 강조했다. 또 이는 위법한 행정입법에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부족한 국내 법제에서 "국가배상을 통한 사법적 권리구제 및 사법통제의 가능성을 인정했다"고도 평가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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