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미국 외교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을 뿐, 동맹국들을 이용해 최소비용으로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사실상 '막무가내'였고, 트럼프 2기는 천하무적 '마징가'처럼 행동하는 외교이다. 트럼프 스타일에 동맹들은 쉽게 떨어져나갈 듯하다. 가진 것과 걸려있는 것이 많은 국가들은 타협하기 쉽다. 트럼프는 미 국익을 위해 이기적 거래를 할 것이다. 거래를 가장한 압박 외교, 트럼프는 무엇이라도 감행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 상대를 체념하게 만드는 외교, 그래서 상대국은 알면서도 당하고, 절반은 접고 시작하게 되는 외교이다. 미 대선 결과가 나온 다음 날 한국의 많은 시사 프로그램들은 미국에게 줄 것은 주자는 목소리로 넘쳐났다. 우리의 심리 방어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철저히 준비된 반전 셈법이 필요하다.
미중관계의 '정전(停戰)'에 대비해야 한다. 2023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기간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으로 전환하고 대만 문제에 암묵적 합의를 이뤘는데 사실상 정전협정이었다. 트럼프 2기에는 대중 압박 강도가 더 세질 듯하다. 단 중국의 경제적 양보가 있다면 제2의 샌프란시스코 협정 체결이 가능하다. 대중국 고관세 60% 공언은 현실적으론 어렵지만 트럼프 임기 내 10%씩 올려갈 수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야 한다.
트럼프에게 어떤 식으로든 우리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태에 우크라이나전쟁과는 달리 일언반구도 없다.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트럼프는 한 달 후인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도 깜깜 무반응이었다. 한미동맹과 한국 민주주의엔 아예 관심도 없는 듯하다. 김정은은 추켜세워도 한국은 언급조차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트럼프는 지난 15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을 자택에 초대했다. 우리에게 아베 부인 같은 이는 없는가? 트럼프와 친분이 있다면 사돈의 팔촌을 찾아서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올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방점을 두었다. 30일 무비자 국가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한 것에서 보듯 관계개선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중국에 대한 전략적이기보다는 전술적 필요성으로 한중관계 개선에 호응했다고 보면서도, 중국은 북러관계의 밀착 대응에서, 한중관계의 관리차원에서 올 한 해 관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왔다. 이 때문에 한국의 탄핵 사태에도 관계개선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12일 중국인 간첩 사건 발언으로 파장이 있었지만 양국 외교부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개선기조의 한중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비공개라도 고위급 간 상호소통을 긴밀히 해야 한다.
한국 외교의 강점은 집중력과 유연성이다. 내년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가용 자원의 총동원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에 올인하거나 주변국들 관계에 있어 과도하게 밀착하거나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과도기 외교의 핵심이다. 이것만 잘해도 탄핵 후유증의 조기 치유에 기여하는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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