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K팝떼창·응원봉…MZ가 집회를 즐기는 법

서지윤 기자,

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21 10:41

수정 2024.12.21 10:41

개성 드러내는 MZ가 집회, 광장과 만나면서 상승 작용
집회라기 보다는 축제 분위기, 또 다른 MZ 불러내는 역할
지난 19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지난 19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것쯤은 정말 별거 아냐 세상을 뒤집자 ha!"
지난 19일 오후 7시15분께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 앞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와 함께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물들었다. 응원봉 파도타기가 이어졌고,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아이돌 팬들이 만든 것처럼 개성 있는 깃발도 곳곳에서 휘날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전후로 집회를 콘서트처럼 즐기는 MZ세대 문화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K팝과 팬덤문화에 익숙하고 개성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이들의 특성이 집회, 광장 등의 요소와 만나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비장함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친근하게 느끼는 분위기는 다른 MZ들을 집회로 불러들이는 역할도 한다.

전문가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일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이색적인 집회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며 모인 3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을 파면하고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집회를 '축제의 장'처럼 만들었다.

현장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의 솔로곡 '아파트(APT.)' 등 흥겨운 K팝이 연이어 들렸다. 참가자들은 '아파트' 후렴구 가사를 개사해 "탄핵해 탄핵해~"를 떼창했다.

앞서 지난 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2024 집회 플레이스트'에 오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을 부르며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K팝이 MZ세대의 집회 문턱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그룹 보이넥스트도어의 응원봉 '원더스틱'을 든 서울 노원구 주민 백모양(17)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나온 해에 태어났고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할 때 그 노래를 처음 알게 됐다"며 "'다시 만난 세계'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고 집회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20여개의 깃발 3분의 1 정도에는 개인이 만든 가상의 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내용이 많았다. '민주개산책시민연대' 깃발을 든 경기 고양시 주민 김모씨(26)는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전국 고양이 배긁어주기 연합', '민주개산책시민연대' 등 이색적인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전국 고양이 배긁어주기 연합', '민주개산책시민연대' 등 이색적인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집회 현장에는 응원봉을 들고나온 40~50대도 있었다. 딸에게 보이그룹 엑소의 응원봉을 빌렸다는 박모씨(58)는 "집에서 가장 빛나면서 날씨 영향도 안 받는 게 응원봉이라 가져왔다"며 웃었다.

바뀐 시위 문화에 정치권도 반응하고 있다. 이날 연단에 오른 육군 대장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보이그룹 라이즈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김 의원은 "막내 비서관과 응원봉을 샀다"며 "박근혜 탄핵 때는 촛불 혁명, 이번 윤석열 파면은 응원봉의, 빛의 혁명"이라고 외치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 참가자들이 굳이 고함을 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국정 운영과 관련해 중대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문화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과거보다 다양한 정체성을 용인하게 된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밀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되며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정체성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연하거나 진지한 모습을 주로 보였던 과거 운동권 세력의 시위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진단도 나왔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앞으로도 집회 양상은 과거보다 점점 더 가벼워지는 흐름으로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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