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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초코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행복' [이환주의 생생유통]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23 06:00

수정 2024.12.23 06:00

투썸플레이스의 시그니처 케이크인 '스초생'. 사진=이환주 기자
투썸플레이스의 시그니처 케이크인 '스초생'. 사진=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단편 소설 제목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보며 스무살 무렵 가난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의 터전을 연상한 하루키의 센스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의 내용은 '기네스북에 실려도 이상할 것이 하나없을 정도로' 가난한 신혼부부가 삼각형 치즈 케이크 모양의 셋집에서 2년 남짓 살았다는 이야기다. 끝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땅 양 옆으로는 국철과 사철 등 두 개의 철도가 지나가 집값이 놀랄만큼 쌌다. 낮에는 사람을 실은 열차가, 밤에는 화물 열차가 지나며 그들에게 가난은 시끄러운 소음을 견디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주 우연한 4월의 어느날 철도회사의 파업이 며칠 이어지면서 소음으로부터 해방된 부부는 햇볕이 내리쬐는 양지에서 고양이와 함께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우리들은 젊었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태양빛은 공짜였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 당시 스물살인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중독적으로 읽었었다. 처음에는 단편을 읽고, 그 다음에는 장편을 읽었다. 이후에는 그의 에세이를 읽고 마지막에는 눈 쌓인 도로의 눈을 치우는 것 같은 마음으로 여행기도 읽고, 수다를 묶어 놓은 책도 읽었다.

치즈케이크. fnDB
치즈케이크. fnDB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지만, 고3 수험생활 시절은 나름으로는 지겨웠다. 대학생이 되면 당시 즐겨보던 '남자셋 여자셋' 같은 시트콤에서처럼 알콩달콩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막연하게 영어를 할 줄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영어 학과에 입학했는데 여학생의 비율이 8:2 정도로 앞도적으로 많았다. 어쩌면 나도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잠깐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 희망이 깨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캠퍼스 커플(CC)은 같은 과 내에서 이뤄지는게 아니라 야속하게도 큰 학교의 캠퍼스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당시 드라마 '허준'의 인기를 등에 업은 한의학과 남학생들을 우리 학과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었다. 무인도에서 온전하게 홀로만 있는 고독도 무섭지만, 고독 중에 가장 무서운 고독은 풍요속의 고독이다. 같이 학식을 먹던 친구 녀석들이 하나 둘 여자친구를 만든 뒤에 사라지자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만 했다. '치즈케이크 모양의 가난' 따위는 '혼자 먹는 학식의 외로운 맛'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가난을 함께 나눌 상대방도 없었고, 철도파업도 없었고, 학식을 사먹을 돈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종합강의동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 상담과 심리 상담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아직 취업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심리 상담을 받았다. 당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무살이던 필자는 상담 선생님에게 배를 보여주고 발라당 자빠지는 개처럼 숨김 없이 이상한 얘기를 쏟아 놨다.

어쩌다가 생일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는데 스무살의 필자는 "친구나 타인의 생일에는 기꺼이 축하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케이크도 선물한다"며 "하지만 나의 생일에 는 어쩐지 그런 모든 의식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1절만 해도 충분하데 이어서 "태어나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스스로가 딱히 훌륭하다거나 축하를 받을만큼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며 "나중에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때가 되면 그때 자신의 생일도 축하하면 될 일"이라고 말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하루키의 소설에 과도하게 심취해 있었고, 집안 분위기도 생일이라고 특별히 케이크를 사서 파티를 하기 보다는 간단하게 미역국 정도를 먹고 기념하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에 다른 사람의 경우 자신의 생일을 설날이나 추석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일케이크를 사고, 초를 꼽고, 축하한다는 말을 나누는 번거로운 의식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화이트 스초생. 사진=이환주 기자
화이트 스초생. 사진=이환주 기자

딸기 초코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행복

지난 11월 19일은 가까이 있는 중요한 사람의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에는 제주도 여행을 하며 성게알이 들어간 미역국을 먹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12월 초 집에 들어가는 길에 투썸플레이스에서 '스초생'이라는 케이크를 샀다. '스초생'은 '스트로베리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의 약자로 이 회사의 베스트 셀러 제품이다. 2014년 출시 이후 10년 동안 꾸준히 팔려 나가고 있으며 올해만 200만개 판매량 돌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여러 층의 부드러운 빵 사이에 초코 크림을 넣고 빵의 외곽을 다시 빵으로 감싸 깔끔한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케이크의 상단에는 16알 내외의 딸기를 풍성하게 올리고 슈거 파우더로 장식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생일은 지났지만 스초생에 준비해둔 초를 꽂고 불일 붙인 뒤 소원을 빌었다. 기념으로 케이크를 감싸고 있던 면으로 된 띠지는 주방 싱크데 옆면에 붙여서 간직하기로 했다. 가격으로만 보자면 성게알이 들어간 미역국이 스초생 한 조각보다도 비쌌을테지만 케이크를 받은 상대방은 연신 신나하면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요리사도 그렇지만 생일 선물도 사기 전과, 생일 선물을 받은 뒤 상대방의 행복한 반응을 볼 때가 가장 좋다.

스초생의 맛은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초코 크림이 조화롭고 케이크 사이사이 박힌 작은 초코볼이 바삭한 식감을 추가해줘서 먹는 재미도 있다. 특히 달콤함 과다로 살짝 물릴듯 하면 케이크 위의 딸기로 상큼하게 입안을 씻어내면 두 조각, 세 조각도 연이어 먹을 수 있다.

스초생을 먹고 3주 정도 지난 뒤에 올해에 새롭게 출시됐다는 '화이트 스초생'도 먹어봤다. 기본적으로 스초생과 동일한 제품이지만 초코 크림 대신 생크림을 사용한 제품이다. 부드러운 크림맛과 함께 케이크 사이사이 호두 같은 견과류도 씹힌다.
처음 한 조각을 먹었을 때는 오리지널 스초생보다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케이크 전체를 다 먹은 뒤에는 오리지널 스초생이 더 생각나는 맛이었다.

마흔 가까이 살아보니 가난하다고 해서 항상 불행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다고 해서 늘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작은 케이크 한 조각 나눠 먹고, 생일에 함께 축하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의 맛이 아닌가 싶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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