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과학기술 협력은 단순히 벽 허물기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연구기관이 지식·기술·경험·자산 등을 공유하면서 개별적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보다 창의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해 가는 실제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협력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더 번거롭고 복잡할 수는 있지만, IMEC에서의 협력처럼 기존 기술을 한 차원 더 도약시키는 혁신적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글로벌 협력에 눈을 돌린 우리나라는 지난 한 해 동안 R&D의 저변을 전 세계로 넓히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먼저 약 140조원 규모의 유럽 최대 다자 간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유럽의 우수 연구자·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직접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공동 R&D를 위한 발판이 만들어졌다. 둘째, 미국과 본격적 협력을 위한 준비도 마쳤다. 뉴욕대에 'AI 프런티어 랩'을 설치, 북미 유수의 AI 연구기관·기업과 협력 교두보를 마련했다. 또한 첨단바이오 분야 협력을 위한 '보스턴 코리아'도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바 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인 보스턴에서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브로드연구소와 같은 기관들과 함께 R&D, 인력양성, 데이터 공동 활용 등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셋째, 각지에 '산업기술협력센터'를 세워 차세대 산업 원천기술에 대한 협력도 추진한다. 미국의 MIT·예일대·존스홉킨스대·퍼듀대·조지아텍과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 등에 산업기술협력센터를 두고 세계 최고 연구기관과 우리 기업의 공동 R&D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 외에도 글로벌 협력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륙 단계에 불과하다. 글로벌 R&D를 통한 가시적·실질적 성과를 누리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노인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떠올린다.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음이다. 제대로 된 글로벌 R&D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환경·문화·생각이 다른 이들이 협력할 때 상호 간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신뢰는 단기간에 얻어지지 않고 꽤 긴 시간 동안 호혜적·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R&D에 발을 내디디며 해외의 연구자들과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온 한 해였다. 앞으로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 연구자·기관이 해외의 우수 연구자·기관과 더 활발히 교류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R&D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끝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성과를 계속해서 만들 것이라 믿는다.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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