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언니, 아빠도 그렇게 가셨어"…세 부자의 닮은꼴 비극[외딴 죽음]②

뉴스1

입력 2024.12.23 05:01

수정 2024.12.23 14:19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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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의 한 농촌 '마을쉼터' 내부 모습. 2024.12.2/ ⓒ 뉴스1 홍유진 기자
충남 논산시의 한 농촌 '마을쉼터' 내부 모습. 2024.12.2/ ⓒ 뉴스1 홍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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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의 한 농촌 마을 입구 모습. 2024.12.2 ⓒ 뉴스1 홍유진 기자
충남 논산시의 한 농촌 마을 입구 모습. 2024.12.2 ⓒ 뉴스1 홍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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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아흔 살 할머니 이금자(가명) 씨는 올해 초 다리와 허리를 다쳐 석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때 만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금자 씨는 "우울?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뉴스1은 지난 두 달간 농촌에 거주하는 자살 위험군 18명과 자살 유족 7명, 주민 및 복지센터 관계자 20여 명 등 50명가량을 만나 자살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전국 정신건강 병·의원 1190곳 분포를 직접 분석한 결과 의사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은 농촌의 현실도 확인했다. 생명존중 탐사 기획 '외딴 죽음'을 통해 금자 씨처럼 적막감에 둘러싸인 '농촌 사람들'의 자살 예방 방안을 모색해 봤다.

(충남·서울=뉴스1) 홍유진 김민수 남해인 기자 = 겨울의 초입인 지난 2일 오후 2시쯤, 충남의 한 농촌 마을. 온통 까마귀 소리가 울렸다.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차를 타고 마을의 북쪽 방향 지름 600m의 저수지를 따라 약 5분간 좁은 도로를 주행했다. 철제 지붕 집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10가구 남짓이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마을 쉼터' 가건물은 폐가처럼 망가져 있었다. 낡은 소파에는 먼지가 앉아있고, 색 바랜 폐자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마을에서 세 남자가 숨졌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곳에서 일생을 보낸 조 씨네 삼부자 이야기다.

지난해 5월 여든한 살의 막내아들 조광수(가명) 씨가 세상을 떠났다. 30여 년 전인 1990년대 후반 광수 씨의 형 철수(가명) 씨가 극단 선택으로 숨졌다. 43년 전인 1981년 광수·철수 씨 형제의 부친 일호(가명) 씨도 안타까운 선택으로 사망했다.

아버지 직접 찾아 나섰던 막냇동생의 전화

광수 씨의 딸 은희(55·가명) 씨는 지난해 5월 동생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또렷이 기억한다. 종일 아버지와 연락이 닿질 않자 직접 찾아 나섰던 막냇동생의 전화였다. "언니, 아빠 가셨어. 혼자 그렇게 가셨어."

광수 씨는 마을 언덕배기 뒤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장소는 광수 씨가 매일 소를 먹이러 가던 길목이었다. 은희 씨네 자매가 어린 시절 뛰놀던 곳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큰아버지(철수 씨)와 할아버지(일호 씨)처럼 안 죽는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절대 그런 선택을 안 할 것이라고 믿었죠."

결코 극단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광수 씨.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던 터였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성격으로 가족에게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인생 황혼기의 광수 씨는 결국 우울증으로 무너져 내렸다.

철수 씨는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었다. 여섯살 아래 동생 광수 씨를 때리고 모질게 부렸다고 한다. 은희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광수 씨)가 항상 큰아버지(철수 씨)를 무서워하면서 큰절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떠올렸다.

아버지 일호 씨는 두 아들의 불화를 지켜보다 못해 마음의 병을 얻었고, 결국 세상을 등졌다. 은희 씨가 열 두살이 되던 해였다. 그로부터 15년여 뒤 큰아버지인 철수 씨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부친의 길을 따라갔다.

세 부자의 죽음은 다른 듯하지만 서로 닮아있다. 폭력과 불화, 술과 빚 같은 단어로만 설명되는 건 아니었다. 이들이 뿌리내리고 사는 환경과 지역이 삶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광수 씨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석 달을 혼자 살았다. 광수 씨와 생전에 가깝게 지냈다는 마을 이장 배 모 씨(남성·59)가 말했다. "광수 씨가 내주던 안주상이 기억에 남네요." 소주 두어병, 비타민 병 음료와 육포, 멸치볶음, 김치가 올라 온 안주상이었다. 자리에서 뜨려는 배 씨의 발을 잡기 위해 광수 씨가 집안 부엌을 샅샅이 털어 내어 온 음식이었다.

배 씨가 광수 씨의 집을 찾아간 것은 마을에 일이 있거나 안부를 물을 때였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이미 옛말이 됐다. 배 씨는 "시골이라 더 가까운 것도 있지만, 그래서 더 멀다"고 말했다.

"가까워 보이지만 마을 내에서도 다양한 갈등이 얽혀있어요. 누구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어도 그 집안과는 할아버지 때부터 척진 일이 있다면서 안 가는 경우도 있지요."

시골 마을의 숨겨진 우울감…'정신건강 복지' 손길 안 닿아

'대체 왜 그러셨을까.' 은희 씨는 여전히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애들도 밥벌이할 만큼 다 키웠겠다, 이제는 정말 잘해드리려고 했는데… 그 맘쯤 제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입원하고 정신도 없었어요. 그때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고,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갔더라면…." 은희 씨는 그날 이후로 끝없는 '가정법의 굴레'에 갇혔다.

"자살로 돌아간 집안에는 뭔가 영적인 게 잠재돼 있나 봐요. 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있대요." 은희 씨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세 부자가 모두 같은 충동에 빠져든 이유를 "영적인 무언가"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자살 사별자는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20~30배 높다. 자살 사별자인 광수 씨는 삶의 의지를 굳게 다져왔지만 결국 세상을 등졌다. 10여 가구가 사는 좁디좁은 마을에서 그가 보낸 위험 신호를 알아챈 이는 정말 없었던 걸까.

어떤 농촌에는 발굴되기 어려운 죽음이 있다. 광수 씨가 살던 곳도 그랬다. 통계청 지역 분류체계상 그가 살던 마을은 '농촌'에서 제외돼 있다. 사방이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충남 논산시로 묶여 지역 분류상 '도시'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군' 단위로 나뉘어 정신건강 복지 서비스가 비교적 촘촘히 이뤄지는 곳과 달리, 도시로 묶여 있는 농촌 지역은 복지 망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 옆 지역인 충남 금산군은 인구가 4만 명이고, 논산은 11만 명인데도 정신건강 복지센터는 똑같이 1곳이다.

광수 씨가 살던 마을에서는 '자살 예방 상담' 안내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옆 지역인 금산군의 주거지역 곳곳에 '자살 예방 안내 전화' 스티커가 붙어있던 모습과 대비된다.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농촌까지 정신건강 복지의 손길이 가닿기는 쉽지 않다.

농촌에 '정신 건강' 개념이 자리 잡지 못한 것도 문제다.
지방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령층은 우울증을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다. 특히 폐쇄적인 시골 마을의 문화도 정신과 문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우울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알더라도 편견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20~30대는 정신질환 치료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노인 세대는 아직 장벽에 부딪혀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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