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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지방소멸시대, 디지털 SOC 활용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23 18:47

수정 2024.12.23 18:55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목하 우리 지방에는 인구소멸의 강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 등을 통해 맞바람을 놓고자 하지만, 기대만큼 빨리 불지 않고 있다. 왜일까. 그 답의 하나를 지난 2022년부터 시작한 지방소멸 대응기금 집행 상황에서 엿볼 수 있다. 자치단체들은 소멸대응이 시급하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정작 기금 집행률은 40%대를 밑돌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직은 사업 초기라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이 기금을 활용해 추진할 만한 마땅한 사업 아이템을 찾기가 어려워져서 그러진 않을까?

자치단체들은 주민의 역외 유출을 막거나 외지인의 역내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주로 교통개선, 복지시설 확충, 문화·관광단지 조성 등과 같이 '아날로그 SOC'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섬 주민의 편의 제고를 위해 연륙교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거주민이 별로 없는 곳까지 다리를 놓기 어렵듯이, 아날로그 SOC를 설치하려면 최소 수요규모(Minimum Efficient Scale)를 필요로 한다. 즉 이런 시설들은 인구규모에 종속적이어서 인구과소 지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종전처럼 아날로그 SOC 위주의 투자사업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 아날로그 SOC 확충사업의 한계를 메워 줄 다른 투자방식이 있는가?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다. 이제 지방의 생활 SOC 확충에 관한 해법도 디지털 시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SOC'로도 지역의 생활편의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발 빠른 지역에서는 섬 지역의 물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IoT를 활용한 빗물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전기장판을 사용하시는 어르신 가정의 화재방지와 고독사 예방을 위해 IoT를 활용한 전기사용 패턴분석 사업에 나선다고 한다.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사업 리스트에도 디지털 SOC 사업들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디지털 SOC는 큰 예산이 들지 않는다. 인구과소 지역에도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사업 아이템 하나를 발굴하면 당해 지역뿐만 아니라 약간의 응용(customizing)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만큼 투자의 한계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SOC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잠재적 허들이 존재한다. 디지털 SOC는 주민 일상의 작은 불편을 해소하는 데 적합한 시설물이어서 사업규모가 크지 않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치적을 보이고 싶어 하는 자치단체장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아날로그 SOC 사업처럼 "통행이 불편하니 도로를 넓히자"는 식과 같이 문제에 대한 해법 도출이 직감적이지 못하다. 어떤 디지털 장치를 어떻게 조합하여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지방 공직자들도 디지털 SOC 사업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 스스로 가성비 높은 디지털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도록 선행연구 시간과 관련 예산을 아낌없이 배려해 주어야 한다.
아니, 사업 아이템 발굴에 정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디지털 SOC 사업에 열성적인 지역에는 최우선 투자를 해 주어야 한다.
생각건대 인구감소 시대에 디지털 SOC는 아날로그 SOC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보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지방소멸 강풍에 대한 맞바람으로 디지털 SOC를 적극 활용해 보면 어떨까.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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