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규제 풀고 선제대응지역 지정
빅딜 등 과감한 개혁해야 겨우 성공
정부가 침체에 빠진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23일 발표했다. 골자는 석유화학 업계의 자율적 인수합병(M&A)과 설비 폐쇄 등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주회사 지분 매입규제 유예·완화, 신사업 M&A 시 신속 기업결합심사, 정책금융자금 3조원 지원 등에 나선다고 한다.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역도 지정한다. 반년 가까이 늦은 대책인 데다 엄중한 현실을 고려하면 자발적 재편 위주의 내용이 실망스럽다. 이 정도로 구조개혁이 성공할지 의문이다.
빅딜 등 과감한 개혁해야 겨우 성공
한때 수출 효자로 반도체·자동차와 어깨를 겨루며 최대 호황을 누렸던 석유화학산업이다. 유가 변동에 따라 호·불황이 요동쳤고, 업계는 계속 몸집을 불려왔다. 그러면서 마진이 높은 '캐시카우' 노릇을 하는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데 주저했다. 정부도 반도체 등 다른 주력산업에 비해 대기업 위주의 대규모 장치설비업인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조선·자동차산업과 달리 고용창출이 크지 않아 구조조정에 늑장을 부렸을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규모의 경제'로 밀어내는 중국·중동산 범용제품에 글로벌 불황까지 덮치자 우리 석유화학업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있는 여수와 울산, 대산 지역 공장가동률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4대 석유화학기업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관련 기업들은 당초 계획했던 설비투자를 줄이고, 일부 공장 지분을 해외기업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수익성이 나빠진 나프타분해시설(NCC) 범용제품 공장, 스티렌모노머 생산공장 등 일부 라인은 이미 가동을 중단했다. 희망퇴직, 근무지 재배치 등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사업재편 규제 문턱을 낮춰줄 테니 국내 기업끼리 자율적 빅딜을 하라는 게 정부가 최선으로 생각하는 방안이다. 국정공백에다 정부 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관료 주도의 기업 통폐합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규제를 한시 유예하는 조치도 정부가 결정할 사안인데, 이를 판단할 정도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가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정부 개입에 따른 잡음과 책임 추궁을 피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은 생산라인을 떼어내 매각하는 게 어렵다. 사업을 통째로 매각하거나, 인수한다 해도 시장점유율이 독과점 기준에 걸리면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빅딜은 발목이 잡히고, 자칫 외국기업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업계 우려를 반영할 과감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석유화학업계가 먼저 적극적으로 구조개편에 나서야 한다. 더 늦으면 구조조정 효과마저 상실한다. 향후 3년 내 전 세계 범용 에틸렌 증설 규모가 연평균 1000만t을 넘어서는데, 65%가 중국이라고 한다. 시장포화가 가속화한다는 의미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주력산업 경쟁력은 한번 잃어버리면 복원하기 어렵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막대한 구조조정 비용이 든다.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값비싼 학습을 한 아픈 경험이 있다. 석유화학산업을 살리려면 3년 안에 빠르게 구도를 재편하고 체력을 길러야 한다. 기업들은 자율적 빅딜에 나서면서 고부가·친환경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자구 노력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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