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정부, 의료공백 수습에 재난기금 '쓱'…서울시 605억 내놓는다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25 15:22

수정 2024.12.25 15:22

의사와 정부 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의사와 정부 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서울시가 재난이 발생할 경우 대응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기금 중 600여억원을 의료 공백 수습에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의료 대란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자체의 재난관리기금을 끌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의정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기금이 소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3일 재난관리기금 운용심의위원회를 열어 재난관리기금 605억원을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정부가 요청한 655억원보다 50억원 적은 금액이다.


재난관리기금은 재난 예방과 복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자체가 매년 적립하는 법정 의무 기금이다. 각 지자체는 최근 3년 동안의 지방세법상 보통세 수입결산액의 1%를 재난관리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시는 이미 지난 9월까지 비상진료체계 지원 명목으로 325억5000만원의 기금을 지출했다. 이번에 추가 지출한 기금까지 합하면 올해 의료 공백에만 총 930억원을 넘게 쓴 셈이다. 이는 서울시의 재난관리기금 총 운용액인 9961억원의 약 9.3%에 해당하는 액수다.

시가 지출한 기금은 전공의가 이탈한 의료기관을 지원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정부는 다른 지자체에도 많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재난관리기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공백을 수습하기 위해 지자체의 재난관리기금을 끌어 쓰는 게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지난 9월 재난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의료기관의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지방재원으로 재난안전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재난관리기금 중 약 10%가 의료 대란에 쓰이지만 당장 기금 운용에 부담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가 올해 지출 심의한 재난관리기금은 총 3996억원으로, 아직 5965억원의 잔액이 남아있다. 또한 보통세의 1%를 재난관리기금으로 적립한다는 관련 법에 따라 내년에 약 2300억원이 추가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의정 갈등으로 집단 파업이 발생해 의료기관에 의료진이 이탈한 사회 재난 상황"이라며 "재난안전법에 따라 시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돼있어서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 기금이 사용되는 것"이라고 기금 지출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남아있는 기금이 6000억 정도가 되고 내년에도 2000억 이상이 적립된다"라며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금액으로 시가 해야 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용하지 않았을 기금이 지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정부가 무리하게 의대 증원을 추진해 발생한 피해를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회재난은 재연재난과 다르게 예측이 가능하고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면 의료 공백이라는 사회 재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당장은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다 해도 앞으로 어떤 재난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며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금이 지출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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