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과 군 동원 반복하는
남미 대통령제 답습 안돼
권력독식 막을 개헌 절실
남미 대통령제 답습 안돼
권력독식 막을 개헌 절실
그래서 뭔가에 홀린 듯 '덜컥 수'를 둔 까닭이 궁금하다. 혹자는 그의 외고집과 음주벽으로 인한 판단력 문제를 지적한다. 그 연장선에서 김건희 여사를 지키려고 무리수를 뒀다는 추론이다. 디올 백과 명태균 녹취록 등 악재가 쌓인 가운데 최근 김 여사 특검법 공세에 한동훈 대표까지 가세하자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영국 더타임스도 "한국 국민이 계엄령의 이유로 '레이디 맥베스'를 지목한다"는 보도로 맞장구쳤다.
물론 소수이지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여러 가지 계엄 발동 사유를 적시하면서 그중 하나로 부정선거를 밝히려는 선제적 조치를 꼽았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맹신한 결과로 본다.
하지만 고학력에 스펙이 화려한 인사 중에도 부정선거 신봉자가 적잖다. 국회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더 많은 계엄 병력을 보낸 것도 증거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정도로. 이게 한낱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불과한지 여부는 앞으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12·3 계엄을 윤 대통령의 편집증적 사고의 산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찍이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대통령제의 위험성'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즉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부딪칠 때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그 극단적 증상은 페루 등 남미에서 흔히 관찰된다. 다수 야당은 걸핏하면 탄핵을 일삼고 대통령은 수시로 군을 동원하는 고질병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무모한 계엄 선포 배경도 대통령중심제의 결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헌법상 발동요건에 미흡한 계엄 선포로 제 발등을 찍었다. 그러나 헌정의 안정적 기반을 먼저 뒤흔든 건 거대 야권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취임한 지 하루밖에 안 된 방송통신위원장을 포함, 지난 2년 반 동안 무려 18명의 윤 정부 공직자를 탄핵소추했다. 각종 특검법안도 27차례나 발의했다. 그중엔 이재명 대표의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용 탄핵이나 특검법도 부지기수였다.
그러잖아도 1987년 개헌 이후 선출된 5년 단임 대통령 8명 중 3명은 퇴임 후 비위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1명은 수사 중 자살했다. 용케 사법처리를 모면한 나머지 전직 대통령들도 본인과 가족, 측근 비위 의혹에서 자유로운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특히 이번에 헌재 심판을 앞둔 윤 대통령 말고도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소추를 당하고, 이 중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당사자들의 잘못이 크지만, '제왕적 대통령'과 그 자리를 속히 쟁취하려는 다수 야당의 충돌도 상당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골자인 이른바 '87년 헌정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12·3 계엄에 따른 헌재의 탄핵 절차와는 별개로 여야는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 로드맵도 속히 내놔야 한다.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중간 정도의 승리에 만족하는 자는 언제나 승자로 있게 되고, 압승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는 흔히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승자독식을 연장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답일 순 없다. 초점은 권력 독식을 겨냥한 "너 죽고 나 살자" 식 '정치판 오징어게임'을 막는 데 맞춰야 한다. 그런 점에선 국회가 뽑는 책임총리를 두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가 더 나은 대안일 듯싶다.
kby@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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