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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의 정책진단] 이제는 경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31 17:34

수정 2024.12.31 17:34

정치쇼에 영향 받지않는
여야정 경제대책위 구성
컨틴전시 플랜 가동해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그런데 어느 새해 첫날보다 국민의 마음은 무겁고 어둡다. 탄핵 재판이 시작되었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이 이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곧 시작된다. 우리 역사의 어려운 시간이 또 펼쳐지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집어삼키고 있고, 앞으로도 한참 그럴 것이기에 지금 맞닥뜨린 이 상황은 너무도 위험하다.

이러한 혼돈의 정치일정을 앞두고 국민과 사회가 아무리 분열될지라도 분명한 건 경제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필자는 '이제는 경제'라는 지식인 서명운동을 한 적이 있다. 2004년 1월 19일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선자금 수사 등 정치적 일정들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경제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와 국회에 상기시키고자 했다. 당시 1000명 넘는 학자들이 참여해 경제를 챙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이야말로 '이제는 경제'를 외칠 때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고, 위기의 정도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대내 위기뿐만 아니라 대외 위기 요인 또한 크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 위기는 시간이 지나 해당 요인과 이슈가 종결되고 나면 후유증이 크지 않지만, 경제는 위기상황에 미리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크고 장기화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온갖 정치·사회적 위협요인도 묵묵히 극복하면서 발전해왔다.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경제를 제도로 뒷받침하는 충성심 강한 공무원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북한이라는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중에도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의 3대 국제신용평가 기구의 평가에서 늘 상위권(Aa2, AA, AA-)의 국가신용등급을 받았다. 이 등급은 일본과 중국보다도 두 단계 위인 것이다. 우리와 같은 등급이었던 프랑스는 올해 5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에 의해 한 단계 아래인 AA-로 떨어진 데 이어 최근 무디스에 의해서도 Aa3로 떨어지면서 우리보다 낮은 단계가 됐다. 심각한 재정문제와 내각의 불신임안 통과 때문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유사한 상황인 우리의 신용등급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건 그나마 우리 기업과 경제는 정치와 재정 문제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다는 국제적 믿음이 작용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더 힘들게 됐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정치로부터 받은 충격을 버텨낼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고, 이 점이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8년 전 탄핵이라는 충격에 이어 주 52시간 근로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의 악재에도 우리 경제는 잘 버텨냈었다. 하지만 계엄사태와 탄핵 의결로 이어지고 있는 이번 위기는 철저하게 경제를 챙기며 경제주체가 합심해야 극복할 수 있다. 더 이상 말로만 민생을 내세우는 정치권의 쇼 정치가 안 통하도록 국민은 깨어 있어야 하고 정치로 실종된 정책을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우선 그 어떤 정치 일정이나 상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여·야·정 경제위기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라서 불안정하다면 국회의장 중심으로 이 위원회를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대내외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철저한 위기 진단과 대책 모색을 해야 한다. 아울러 그간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법개정과 주 52시간 근로제 같은 법적·행정적 규제를 줄여주는 노력도 해야 한다.


아울러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질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서 경제와 외교의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짜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와 국회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내 여러 정치 상황과는 무관하게 경제만큼은 건전하게 그리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분명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민과 기업에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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