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져 있다시피 압구정은 조선 세조의 책사 한명회의 호다. 정자는 없어졌는데, 1481년 한명회가 왕명에 따르지 않는다고 화가 난 성종이 부쉈다고 한다.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표석이 있다. 실제 위치는 11동 근처 한강이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한명회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고 정자를 지어놓고 매일같이 연회를 열었다. 그러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예겸이라는 대학자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해 얻은 게 압구정이다. 압구는 갈매기를 잡아 갈매기들로부터 외면받은 어부의 이야기로, '열자'라는 책에 나온다고 한다. 살육으로 권력을 쥔 세조를 도운 한명회를 비꼰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한명회는 죽을 때까지도 뜻을 몰랐다고 한다.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났던 압구정동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됐던 1970년대 말이었다. 현재 한 채에 50억원 넘는 값으로 거래되는 현대아파트와 미성아파트 등이 강변을 따라 줄지어 지어졌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40%를 담당한 현대건설에 정부는 공사대금으로 압구정동을 포함한 한강 공유수면 소유권을 주었다. 이곳에 현대건설이 아파트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짓는 데 정주영 회장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나 이명박 부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특혜분양의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1512가구를 건설하되 952가구는 무주택 사원들에게 분양하고 나머지 560가구만 일반분양하기로 했다(동아일보 1975년 9월 15일자·사진). 당시 압구정동은 교통이 불편하고 기반시설이 부족해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곧 부자들의 관심을 끌어 분양권에 한 채 값의 프리미엄까지 붙었다. 그러자 고위 인사들이 현대그룹과 정부 관계자를 통해 분양권을 얻어냈다. 결국 무주택사원용 952가구는 291가구로 줄었고 나머지는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군장성, 법조인, 언론인 등에게 분양됐다.
옛 합동통신 기자가 복덕방 업자들로부터 우연히 특혜분양 소문을 듣고 기사화한 뒤 이후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한국도시개발 사장이던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등 5명이 구속됐지만, 대체로 처벌 수위가 약했다. 특혜분양을 받은 56명은 면직 등 징계 처분을 받았으며 나머지 수백명은 면죄부를 받았다.
아파트 건설을 위해 현대건설은 주택사업부를 확대해 한국도시개발을 설립했는데 나중에 현대산업개발이 된다. 이런 연유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로 이름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주민들이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한다. 현대아파트에는 정윤희, 유재석, 김희애, 강호동, 이순재씨 등 유명한 연예인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다. 앙드레 김도 생전에 살았다. 지금은 강남 최고의 입지로 한강과 연계한 재건축이 추진 중이다.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쓰이던 8평 구조였던 65동은 바닥과 기둥만 남기고 완전히 리모델링을 해 80평대 56세대로 세대 수를 대폭 줄였다. 공식적인 이름은 대림아크로빌이지만, 지금도 현대아파트 65동으로서 현대아파트에 속하는 것을 주민들은 원한다고 한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최근 최고 용적률 300%의 2606세대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하는 계획을 승인받았다. 현재는 남향인데 한강뷰를 위해 북향이 된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강 남쪽 강변 아파트들이 한강 조망을 하지 않고 남향을 하고 있는 것을 의아해한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자들도 남향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강을 바라보고 산을 등지는 방향이 좋다고 말한다. 다만 햇볕이 적게 들어오는 점은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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