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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위기일수록 적극적 R&D 투자 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1.02 18:29

수정 2025.01.02 19:04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정치적 혼란에 더해 비행기 사고마저 겹쳐 모두가 힘들었던 12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올해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그 진원지는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과격한 공약을 쏟아냈지만 모두 현실화될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양자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의 성향상 협상 결과에 따라 미국의 정책이 국가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으로 하여금 방어적 경영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전망에서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진단도 있어 수출 의존성이 높은 우리 주력기업으로서는 공격적 경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위한 투자가 충분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투자가 위축되지 않아야 할 곳은 연구개발(R&D) 부문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요소투입형 성장 공식이 통하지 않는 경제수준에 올라와 있다. 결국 혁신을 통한 성장만이 살길인데, 여기에 R&D 투자는 핵심적 요소이다. 이제 우리 주력산업은 범용기술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범용기술 영역에서는 요소투입형 성장이 가능하므로 후발주자의 추격이 매서운 상황이다.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을 봐도 이제 범용상품을 생산해서는 대규모 요소투입이 가능한 국가의 도전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후발주자와 기술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우위를 가져야 우리 기업의 미래가 보장된다.

'2023년 산업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기술 수준은 최고기술국 미국에 비해 0.9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21년 조사의 0.8년에 비해 오히려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경영여건상 민간의 R&D 투자 여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다행히 올해 정부 R&D 예산은 작년 대비 11.5% 증액됐지만 R&D 예산 삭감 전인 2023년과 비교하면 3000억원 정도 늘어난 수준이어서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과학기술인력 수급도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2024~2028년 동안 과학기술인력은 4만70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트럼프도 일부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전문인력(H-1B)비자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트럼프 진영 내 일부 인사의 주장대로 H-1B비자 상한선이 폐지된다면 이제 미국은 세계자본을 빨아들이는 것과 더불어 세계 고급인력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우수한 과학기술인력 확보 없이 성공적인 R&D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술경쟁력은 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요소인 동시에 이제 국가의 국제정치적 위상과도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등 주요 산업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경쟁력이 없다면 한국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R&D 투자는 개별 기업 경영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 R&D 투자 조세지원 수준은 주요 선진국 대비 크게 미흡하다.
특히 민간기업 R&D 투자의 약 62%를 차지하는 대기업 R&D 투자액 대비 정부 조세지원 비율(2023년)은 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에 크게 못 미친다.

위기일수록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투자가 위축돼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더욱 긴밀한 민관협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의 시간은 지나가겠지만 위기 이후의 성과는 어려운 시기에 얼마나 잘 준비했느냐에 달려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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