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스파이가 된 관능적 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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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안나, 관객은?" "지붕 끝까지 꽉 채웠지."
"기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다 모였지."
뮤지컬 '마타하리'에서 의상 디자이너 안나와 무희 마타하리가 공연을 앞두고 늘 주고받는 말이다. 이중스파이 혐의로 총살을 앞둔 순간에도 둘은 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찬란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걸그룹 마마무의 리드보컬 솔라가 뮤지컬 배우로 성공리에 안착했다. 지난 2022년 '마타하리'로 뮤지컬계에 데뷔한 그가 희대의 요녀와 정치의 희생양을 오가는 마타하리를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냈다. 지난 10일 공연에서 솔라는 원숙한 카리스마와 섹시함보다는 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고혹미를 갖춘 마타하리를 선보였다.
김문정 음악감독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통해 뮤지컬계에 입문한 그는 지난해 '노트르담 드 파리'에 에스메랄다 역으로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솔라로선 두번째이자 네번째 시즌을 맞은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무희 마타하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마타하리는 어머니가 자바계 혼혈이며 인도네시아에서 산 경험이 있다. 결혼 실패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무희로 제2의 인생을 살다 전쟁 중 이중스파이 혐의로 41세에 생을 마감했다. 마타하리가 실제 첩자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뮤지컬은 마타하리와 안나의 우정을 바탕으로 마타하리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라두 대령과의 갈등, 공군 아르망과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팜므파탈 마타하리보다 아르망과의 순수한 사랑을 한 보통의 여자이자 정치적 희생양,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책임진 주체적 여성으로 표현했다.
'10년차 가수' 솔라는 이날 동양적 미로 유럽 사교계를 휩쓴 마타하리의 탄생을 알리는 '사원의 춤' 장면에서 그야말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놨다. '믿고 듣는 솔라'로 통했던 그는 극적인 엔딩을 장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넘버를 매끄럽게 소화하며 대극장 무대를 책임질 주역으로 손색없는 가창력을 뽐냈다.
'아르망' 윤소호는 작은 얼굴에 큰 키, 소년미로 눈길을 끌었고 노윤은 '라두 대령'의 복잡한 감정을 원숙미와 카리스마로 설득력있게 표현해냈다. 여기에 발레리나를 마타하리의 또 다른 자아 '마가레타'로 기용, 그의 내면을 춤으로 표현해 서사를 풍성하게 했다.
무대 미술을 보는 재미도 있다.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거리를 재현한 세트는 낭만적 정취를 자극한다. 또 전쟁의 참혹함을 세트 전환을 통해 한눈에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전쟁터로 간 남편과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창문 앞 여성의 모습이 어느 순간 참호 속 군인의 지친 모습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한번 벽 세트를 돌리면 그 모습이 동시에 보이게 연출했다. 마타하리와 아르망, 라두 대령의 삼각관계를 빛을 이용한 신기술 무대로 표현한 점도 시선을 끈다.
주인공이 당대 최고 무희였던 만큼 200벌이 넘는 화려한 의상과 관능적이면서 화려한 안무 연출도 볼거리다. 3월 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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