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학대 상처 남은 딸 볼 때 가슴 아파… 엄마가 더 노력할게" ['아동학대 제로' 서울로]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1.21 18:04

수정 2025.01.21 18:34

(下) 격리됐던 엄마는 어떻게 달라졌나
아픈 정신에 어린 딸 돌보지 못해
분리 후 같이 살기까지 4년 걸려
처음엔 억울했지만 꾸준히 상담
잘못 뉘우쳐 공황·우울 약물치료
드라마처럼 문제 사라지지 않아
딸 마음 아직 다 열지 못했지만
서로 향한 사랑 느끼고 노력할 것
은희씨 모녀가 최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손잡고 있는 모습. 사진=윤홍집 기자
은희씨 모녀가 최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손잡고 있는 모습. 사진=윤홍집 기자
"아, 나 손이 못생겨서 안 되겠어", "엄마 손이 왜(웃음)."

손잡는 사진을 찍는 모녀는 서로의 손을 보며 키득거렸다. 누구의 손이 더 예쁘고, 누구의 손이 더 못생겼는지가 이들의 관심사였다. "너 손톱에 때 낀 거 봐." 짧은 시간 동안 장난 섞인 말들이 오갔다.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녀 사이엔 사실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김은희씨(가명·31)는 딸 선아양(가명·13)과 아동학대로 4년간 분리돼 있다가 불과 3개월 전에 다시 살게 됐기 때문이다.

4년 전 김씨는 당시 남편(선아양의 계부)이 선아양을 학대하는 것을 방치했고, 때론 그도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사건을 접수한 아동보호 전담공무원은 선아양을 가정으로부터 즉시 분리 조치했다.

모녀가 다시 함께 살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던 김씨는 36차례에 걸친 심리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았다. 엄마에게 애착을 갖고 있던 선아양은 가정 복귀 의지를 피력했다. 파이낸셜뉴스는 김씨 모녀와 이들을 담당하는 아동학대 상담원을 만나 최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씨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보다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선아양은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열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4년 전 아동학대는 어떻게 발생했나.

▲은희=정신건강이 안 좋아서 집을 자주 비웠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 보는 게 힘들어서 도망 다닌 거였다. 선아 얼굴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환시에 시달렸다. 근데 그때 전 남편이 아이를 많이 때렸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전 남편과 이혼했다. 솔직히 나도 때리거나 폭언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한다.

ㅡ아동학대 신고·조사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은희=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너희가 뭔데 나한테 아동학대했다고 하고, 선아를 데려가려 하는지 화가 났다. 상담하는 것도 싫었고 모든 게 짜증 났다.

▲선아=어른들한테 화가 났다. 나를 때린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받은 내가 집을 떠나는 게 싫었다. 때릴 때는 다 때려놓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하려고 하니까 기분이 나빴다.

ㅡ아동학대를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상담은 받았더라.

▲은희=상담받지 않으면 선아를 못 본다고 해서 억지로 받았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컸는데, 선아와 분리돼 있는 동안 내가 선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4년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약이 된 거 같다.

ㅡ아동학대는 어떻게 인정하게 됐나.

▲은희=상담을 2년 넘게 받으면서다. 선아가 보호시설로 간 뒤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는데, 상담해 주신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해주더라. 그때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마음이 열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작은 일도 넘기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제서야 내가 선아를 아이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아이니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는데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정말 많이 반성한다.

ㅡ김씨는 얼마나 바뀌었나.

▲선아=많이 변했다. 화도 안 내려고 하고 때리지 않으려고 한다. 솔직히 아직 엄마가 무섭긴 하다. 그래도 나를 좋아한다는 건 느껴진다.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상담원=아동학대 행위자가 학대를 인정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어머님은 자신이 아동학대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아진 거다. 만약 아동학대 재발 가능성이 있었다면 절대 가정으로 복귀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ㅡ선아와 4년 만에 다시 살게 됐는데 어떤가.

▲은희=쉽지만은 않다. 드라마처럼 한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소될 수는 없다. 지금도 가끔 공황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받아들이려 한다. 선아가 내가 바라는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선아가 아직 마음을 다 열지 못했다. 지난번에는 '엄마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가슴이 많이 아프고 미안했다. 선아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돼 있을 거라고 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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