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롤링스톤스의 뮤즈' 메리앤 페이스풀 별세

이석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01 07:29

수정 2025.02.01 07:29

믹 재거와 동거 등 자유분방한 삶 살며 1960년대 '아이콘'으로 각광

1960년대 '아이콘'으로 영국 가수 겸 배우인 메리앤 페이스풀의 젊은 시절 모습. LTW 웹사이트 갈무리.
1960년대 '아이콘'으로 영국 가수 겸 배우인 메리앤 페이스풀의 젊은 시절 모습. LTW 웹사이트 갈무리.

[파이낸셜뉴스]1960년대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영국의 가수 겸 배우인 메리앤 페이스풀이 7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월 3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페이스풀의 대변인은 "메리앤이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평화롭게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그는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라면서 "가수이자 작곡가, 배우인 그의 죽음을 알리게 돼 매우 슬프다"고 말했다.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난 페이스풀은 1964년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담긴 데뷔 싱글 '눈물을 흘리며'(As Tears Go By)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페이스풀은 연극과 영화로 진출해 당대 미남의 대명사 알랭 들롱과 출연한 '그대 품에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1965년 결혼해 아들을 낳았으나 이듬해 결별하고 믹 재거와 동거하며 분방한 삶을 살았다. 당시 페이스풀은 롤링스톤스의 음악 활동에 영감을 주는 '뮤즈'로 묘사됐으며, 재거와 어울리며 마약 중독과 각종 추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1970년 재거와 결별하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박탈된 뒤에는 런던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재개해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2년 만에 노숙생활을 끝낸 그는 1976년 새 앨범 '내 꿈을 꿈꾸며'(Dreamin' My Dreams)로 음악계에 복귀했고 닉 케이브, 데이먼 알반, 메탈리카 등과 협업하며 최근까지도 새 노래를 내놓았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말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주로 거주했다. 그는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5년 파리 총격 테러 직후에는 '그들은 밤에 온다'(They Come at Night)는 곡을 쓰기도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의 연인이었던 재거는 페이스풀의 사망 소식에 "그는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그는 멋진 친구였고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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