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희생자들의 가족 누군가는 이곳 레이건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 슬픔은 상상조차 힘듭니다."
미국 워싱턴DC 항공기 충돌 사고 발생 이틀 뒤인 31일(현지시간) 오전,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립 공항'(레이건공항)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 공항 이용객, 이들을 안내하는 항공사 직원들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사고 여파로 무거운 공기가 실내를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레이건공항 3층 항공사 체크인 부스에서 유리창문 너머로 활주로를 바라보던 데릭 앨리슨(37) 씨는 "나도 오후에 같은 기종을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집으로 갈 예정인데, 어제 항공편이 취소돼 오늘 다시 온 것"이라며 "평소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나오지만 오늘은 왠지 더 일찍 공항에 나오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날 레이건 공항에서는 사고 항공기와 같은 기종인, 'American eagle'(아메리칸 이글) 글자를 기체에 새긴 소형 여객기가 쉼 없이 이착륙을 반복했다. 공항 3층 양 끝에는 조명, 카메라 등 방송 장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데릭 씨는 "정말 끔찍하고,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고였다"면서 "사고기 가족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사고"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지 언론은 사고 발생 경위를 짚고,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9일 캔자스주 위치타 위치타미드컨티넨트공항(ICT)을 출발한 아메리칸항공 산하 PSA항공의 소형 여객기는 이날 오후 8시50분께 워싱턴DC 인근 레이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훈련 비행 중이던 미 육군 블랙호크 헬기와 충돌, 공항 옆을 흐르는 포토맥강으로 추락했다. 백악관 및 의회의사당과 불과 5km 남짓한 거리에 발생한 참사다.
여객기에는 64명(승객 60명, 승무원 4명)이 헬기에는 3명의 군인 등 총 67명이 두 항공기에 탑승해 있었는데, 현지 경찰과 구조대는 모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헬기가 레이건 공항 관제탑으로부터 허가 받은 경로(고도 200피트 이하)보다 높은 300피트를 초과해 날았다고 전했고, CNN은 사고 당시 본래 2명이 근무했어야 할 시간대에 관제사가 1명 뿐이었다라는 소식을 보도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헬기가 여객기가 같은 고도에 있었던 점 등과 관제 인력의 전문성 등을 거론한 바 있다.
항공기 충돌 사건이 발생한 직후 레이건공항은 모든 운항을 중단했고, 이튿날인 오전 11시 운항을 재개했다.
희생자 중에는 위치타에서 열린 전국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20명의 젊은 피겨스케이터와 코치들도 포함돼 있다.
공항에서 만난 엘리자베스(19, 메릴랜드) 씨는 "저도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했기 때문에 탑승했던 선수 몇몇을 알고 있었다"라면서 "훌륭한 피겨 스케이터와 코치들을 잃게 된 것이 정말 슬펐다"라고 했다.
존(48, 메릴랜드) 씨는 "매우 슬프고, 잘 믿기지 않는다"면서 "헬리콥터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여객기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181명이 숨진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와 관련해 "한국에서도 착륙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숨진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를 사실 조금 전에 알게 됐다"면서 "한국인들도 우리의 슬픔을 잘 공감할 거 같다"라고 말했다.
당국은 사고 원인을 예측하지 않겠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시작했지만, 이번 사고는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레이건공항의 연간 수용인원은 당초 1500만 명 규모지만, 현재 2500만 명의 승객을 처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건공항 바로 옆에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백악관, 미 의회 청사 및 연방 정부 청사들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 때문에 미 전역에서 모여드는 항공기로 넘쳐나는데, 정치인들이 자기 지역구로의 빠른 이동을 위해 항공편을 늘려달라는 로비를 벌여왔고, 최근까지도 더 많은 항공편을 허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수색작업이 한창인 공항 인근 포토맥강은 경찰에 의해 진입이 차단돼 있었다. 공항 인근 야생동물 서식지인 로치스런워터포울보호구역(Roaches Run Waterfowl Sanctuary)의 작은 주차 구역도 경찰이 입구를 봉쇄했다.
구조대는 사고 직후 섭씨 1도 안팎의 낮은 수온과 수면이 항공유로 뒤덮인 악조건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구조 작업을 했지만, 생존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전날 오후까지 41구의 시신을 수습했고, 이날 오전까지 28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