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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셈법에 실패만 거듭… "원포인트 개헌 속도내자" [87년 체제를 넘어, 개헌론 분출 (하)]

서영준 기자,

이해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02 19:20

수정 2025.02.02 19:20

포괄·전면적 개헌 합의 어려워
2000년 프랑스 개헌 선례 삼아
광범위한 내용에 손대기보다
권력구조 개편 집중도 한 방법
정치 셈법에 실패만 거듭… "원포인트 개헌 속도내자" [87년 체제를 넘어, 개헌론 분출 (하)]
대한민국헌법은 1948년 제정된 이후 제9차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개헌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차기 대권을 앞둔 여야의 엇갈린 셈법이 개헌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그 때문에 12·3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에 이르는 현 정국이 개헌의 적기라는 인식 아래서도 개헌은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속된 개헌 추진에도 실패

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1987년 체제 이후 개헌에 대한 연구와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성공 사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는 개헌의 핵심 의제로 항상 제시됐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개헌 논의는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이른바 DJP 연합을 띄우며 의원내각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외환위기로 더 이상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에 집중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018년 전면적인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2016년 하반기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부터 이듬해 박 전 대통령 탄핵까지의 시기는 다시금 개헌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 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여야는 극심히 대립했고, 개헌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지금도 과거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와 분위기가 상당히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개헌 논의는 주요 의제로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또한 여야의 유불리 셈법이 작용한 탓으로 해석된다. 차기 대선에서 유력 후보를 보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에 급할 이유가 없다. 반면 국민의힘은 개헌에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국회 입법 권력을 차지한 민주당의 결정이 개헌 논의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의중이 핵심으로 꼽힌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국민의 60~70%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고,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개헌이 꼭 필요하다"며 "이 대표가 포용력을 갖고 절실한 정치개혁을 위해 개헌을 주도해 국민적 지지를 크게 증폭시켜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원포인트 개헌으로 접근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크지만 결국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데는 단일 의제형 개혁이 아닌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개헌에 집중한 경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8년 문 전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당시 개헌안은 권력구조 측면에서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되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것에 더해 국민주권, 지방분권 등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여야의 극심한 이견 속에 개헌안은 국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그 대신 2000년 프랑스의 개헌은 한국의 개헌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 당시 프랑스는 대통령의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내용의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임기만 단축하는 소위 원포인트 개헌으로, 국회의원 임기와 맞추기 위함이었다.

당시 개헌 추진 과정에서도 반대파는 있었지만 의회와 국민의 요구가 컸고, 광범위한 안건보다는 임기단축안 하나로 개헌을 추진해 성공에 이르렀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개헌의 범위를 넓힐수록 개헌에 대한 이견은 커지게 되고 국회 3분의 2 이상의 절대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며 "따라서 2000년대 이후 프랑스와 같이 한두 가지 쟁점만 다루면서 점진적이고 반복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개헌 찬성론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내용에 손대기보다는 이번 기회를 통해 권력구조 하나에 집중해 원포인트로 개헌을 하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민의 60~70%가 이미 개헌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의견만 모은다면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한 개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탄핵 심판 중 가능한 한 빨리 원포인트로 개헌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며 "탄핵 기간 내에 하면 좋지만 만약 상황이 안되는 경우에는 차기 대통령 선거와 국민투표를 같이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syj@fnnews.com 서영준 이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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