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국내 자체 핵무장론이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정부의 입장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핵무장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며 일축했지만, 최근에는 외교장관이 직접 아직 논의할 적기가 아니라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공개적인 핵무장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워싱턴선언 내세워 핵무장론 밀어내던 당정..트럼프 당선 직후 기류 바뀌어
1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은 한미 워싱턴선언으로 가라앉았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급부상했다.
먼저 올해 들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핵무장론에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조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조건부 핵무장’을 주장에 북한 비핵화 견지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아직 그런 말을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어 조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에선 핵무장 가능성을 묻는 질의가 나오자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독자적인 핵 억지력 요구가 증가하는 건 사실이고, ‘플랜B’가 결코 논외인 주제는 아니지만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뮌헨안보회의 계기 한미와 한미일, G7(주요 7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키로 했음에도 핵무장론을 완전히 일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불과 수개월 전인 지난해와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지난해 7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 간에 일체의 핵무장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낸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핵무장론을 강하게 밀어낸 계기는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을 통해 추진한 핵 기반 한미동맹이다. 구체적으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핵작전을 포함시키고 미 핵전력을 공동 기획·집행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두고 사실상 핵공유 수준의 확장억제 강화라서 핵무장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202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미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해온 윤석열 대통령마저도 워싱턴선언 이후에는 핵무장론에 거리를 뒀다.
국민의힘에서도 핵무장 반대 의견에 힘이 실렸다. 나경원 의원이 지난해 6월 다년간 견지해온 핵무장론을 주장하자 윤상현 의원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초래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북미정상회담 경험을 가진 데다 북미대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온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외교장관인 박진 전 장관이 같은 달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전략포럼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 단행을 전제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본격 추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8달만 핵무장 돌아선 윤상현..조기대선·북미협상 거쳐 득세할 듯
지금도 핵 기반 확장억제는 유지되고 있고, 트럼프 정부의 북한 비핵화 목표 유지 입장도 받아냈다. 그럼에도 핵무장론이 다시 떠오르고 조 장관이 직접 여지를 남기는 데 까지 이른 건, 일단 북미대화가 시작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하게 비핵화를 포기하고 ‘스몰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도 대북정책과 관련해 소위 ‘트럼프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크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결국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둬놓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전만 멈춰 세우는 현실적 접근을 합리화할 것”이라며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시켜 미 본토 타격 위협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성과로 과시할 수 있고,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전술핵무기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도 같은 우려에 따라 기류가 변하고 있다. 눈에 띄는 입장 변화를 보인 대표적인 정치인이 윤상현 의원이다. 8개월 전만 해도 나 의원의 핵무장론을 만류하던 그가 지난 12일 대정부질문에서 조건부 핵무장을 외치고 조 장관에게서 ‘시기상조’라는 답변을 끌어내서다.
윤 의원 외에도 나 의원도 시종일관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고, 안철수 의원·유승민 전 의원·오세훈 서울시장·홍준표 대구시장 등 대선주자로 꼽히는 거물급 인사들도 최근 핵무장이나 핵공유를 주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조기 대선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핵무장론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더욱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또 향후 북미협상 과정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부분철수 등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일어나면, 정부 차원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요구 등 실질적 대응도 이뤄질 전망이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