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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계 뻔한 '52시간' 땜질처방, 법개정 뒤따라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12 18:26

수정 2025.03.12 19:15

R&D 연장근로 특례로 대신하기로
잠시 숨통 틀지라도 근본 해법 못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 연구개발 주52시간 예외규정 허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야당의 반대에 막히자 정부가 12일 결국 자체 방안을 내놓았다. 연구개발직에 한해 주 64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특례를 시행하겠다는 게 골자다. 기존 1회에 3개월씩 총 3회 연장 가능했던 것을 6개월을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르면 다음 주부터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간과 싸우는 개발자들에게 획일화된 강제 근로제도는 독배와 다르지 않다.

개발팀이 실험을 하다 말고 근로시간 준수를 위해 불을 끄고 퇴근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은 어떤 형태로든 개선이 불가피하다. 해외 경쟁국 기업 어디에도 우리처럼 연구직 칼퇴근을 적용하는 곳이 없다. 지금 우리 국내 테크기업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와 불필요한 규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업계와 학계에서 수도 없이 지적했고, 이를 반영한 것이 국회에 제출된 반도체특별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기업 주도 성장론을 외치며 연구직에 한해 52시간 예외를 두자며 수용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현행 제도가 기업 현장과 맞지 않는 걸 스스로 인정했으면서도 노동계가 반대 의견을 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꿨다. 이 대표의 실용주의는 온데간데없다.

국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휘청이면 일자리 전체가 위협받는 게 우리 현실이다. 세수도 덜 걷혀 국가재정도 타격을 입는다. 국가안보와도 직결된 산업이라 정부가 앞장서 기업 앞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뒷받침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파격적인 보조금 혜택은 못 줄망정 꽉 막힌 제도로 기업 뒷다리를 잡는 것이 온당한가. 52시간 근로제를 손끝 하나 건드려선 안 된다는 노동계에 야당이 이리 끌려다녀서 될 일인가. 기술직, 전문직을 상대로 유연근무를 허용하는 것까지 진영 대결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기가 찬다.

정부의 52시간 특별연장근로 특례 신설은 특별법 개정이 요원한 상태에서 불가피한 고육책이다. 이렇게 땜질 처방을 해서라도 기업의 숨통을 터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코 근본 대책이 될 순 없다. 기존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고용부에 내야 하는 서류가 복잡하고 근로자 동의 절차가 까다로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해 연구개발로 인한 특별연장근로 사용은 0.5%에 불과했다. 3개월마다 반복하던 절차를 6개월로 늘렸으니 그나마 개선된 것이라 하겠지만, 속도가 경쟁력인 현장에서 굳이 이런 모래주머니를 기업이 달고 뛸 이유가 없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어느새 중국의 맹렬한 추격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삼성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1위 대만의 TSMC와 3위 중국 SMIC 사이에 낀 2위 신세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삼성과 TSMC의 점유율 격차는 이전보다 더 벌어졌고, SMIC와 격차는 확 좁혀졌다.

이러다 삼성이 SMIC에 2위 자리까지 내줄 수 있다. 시간이 없다. 시대 역행적인 52시간 강제조항을 한시적으로라도 풀어주는 법 개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야당은 노동계 눈치만 보지 말고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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