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뉴스] #. 최근 유명 가수 A씨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네티즌들이 "기부를 왜 안 하냐"는 쓴소리를 들었다. 경상도 산불이 확대되는데 본인은 뭐하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에 A씨는 "솔직히 네티즌들의 눈치 때문에 소액이라도 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최근 경상도 산불 피해가 확산되면서 연예인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서는 특정 유명인들을 겨냥한 '기부 강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기부 본질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반응과 '연예인 괴롭히기'라는 반응이 상충돼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9일 연예 기획사 등에 따르면 소속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으로 경상도 산불 피해와 관련한 기부 강요 DM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SNS 통해 기부 압박.."소액이라도 안 하면 욕먹을까 봐"
한 소속사의 부대표는 "소속사 가수가 '너는 돈도 많이 버는데, 재앙을 눈 감고 있는 게 사람이냐'는 취지의 DM들을 수시로 받아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며 "이에 인스타그램을 폐쇄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명인 산불 기부 명단'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기부 사실이 알려진 유명인들을 기부 금액이 큰 순서대로 나열해 기부 명단을 만들었다.
명단을 보면 △세븐틴, 정국(10억원) △JYP엔터(5억원) △지드래곤, SM엔터(3억원) △아이브, 아이유(2억원) △라이즈, 재민, 지수(1억5000만원) △황영웅(1억4000만원) △정동원(1억3000만원) △공유, 김우빈, 김준수, 도영, 마크, 미연, 백종원, 수지, 슈가, 슬기, 신민아, 에이티즈, 영탁, 윈터, 윤아, 은혁, 이병헌, 이영지, 이종석, 이준호, 이찬원, 이효리, 장근석, 장민호, 재현, 전소연, 정해인, 제노, 제니, 제이홉, 지창욱, 차은우, 카리나, 태연, 태용, RM(1억원) 등 가수, 배우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해당 커뮤니티에선 이 명단을 근거로 '다른 유명인은 왜 기부를 하지 않냐?'는 취지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기부자 명단' 확산..금액 순 비교까지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도 이 논란에 휩싸였다. '손흥민은 주급으로 19만 파운드(약 3억6000만원)를 받는데도 산불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국적 연예인들이 표적이 되며 더욱 지탄을 받았다.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얀마와 태국 강진으로 피해를 본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 안전하길 바란다"라는 글을 영문으로 게재했더니 수십만 건의 한국인 항의 DM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 내용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재난을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리사 외에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그룹 2PM 닉쿤, 갓세븐 뱀뱀, (여자)아이들 민니, 베이비몬스터 치키타 등 태국 출신 아이돌 멤버들이 동남아 강진의 안전을 당부하며 위로하자 한국 산불 피해와 관련해 기부 하라는 협박성 DM들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소속사의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에서 기부 강요 DM 폭탄으로 소속 가수가 쇼크를 받아 정신병 약을 먹을 정도"라며 "기부를 강요하는 한국 문화에 치가 떨린다"고 분개했다.
최근에도 네티즌들은 연예인 기부 강요 문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연예인들이 팬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당연히 기부를 해야 한다"는 반응과 "기부도 선택인데, 연예인 괴롭히기"라는 반응이 상충된다.

한 네티즌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국적의 연예인들이 주무대인 한국의 산불 피해를 외면하고, 자기 나라의 재앙만 언급하는 것은 너무 한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네티즌은 "연예인들도 같은 사람의 범주 안에 들 뿐, 기부를 무조건 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며 "오지랖이 넓은 한국 팬들의 강요"라고 강조했다.
NGO "기부는 자율적 참여..강요는 본질 훼손"
이에 대해 기업이나 연예인들의 기부 문화를 이끄는 NGO 단체들은 자발적인 선행이 참다운 기부 문화라고 당부했다.
익명을 요구한 NGO의 한 단체는 "과거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요즘은 누구나 자신의 여건에 맞게 기부에 참여하는데, 온라인 등 기부 방법도 다양해졌다. 자신의 기부증서를 SNS에 알려 동참을 권하기도 하는데, 기부 문화가 '참여'에서 '동참'으로 바뀐 것"이라면서 "그렇게 사회는 '공감'을 토대로 공동체가 강화되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다. 강요가 아닌 ‘동참’을 호소하고, 이에 공감해 마음에서 우러난 기부가 이뤄지는 게 올바른 기부 문화"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NGO 단체는 "기부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될 때 건강한 기부문화가 조성되는데, 기부가 부담이나 불편감에서 비롯된다면 이를 받는 사람들도 마냥 기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전적인 기부가 아니더라도 재능 기부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부 방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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