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포탄을 쏘아대며 격발시킨 통상전쟁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증시와 환율은 줄줄이 곤두박질쳤고, 원자재 가격은 급락하며 파랗게 질린 투자자들을 지옥문으로 밀어넣었다. 지구촌 곳곳 경기침체의 파열음 속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것이 오고 있다"는 비관론이 넘쳐났다.
중국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하루 만인 4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34% '맞불 관세'를 발표했지만 트럼프는 7일 "50% 추가 관세를 9일 발효시키겠다"고 압박했다. 통상전쟁은 미중 힘겨루기 속에 수렁으로 빠졌다.
"각국이 우리를 갈취해 왔다. 이건 끝내야 해. 그들은 흑자를, 우리는 적자 보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외치는 트럼프는 유권자와 지지층을 의식한 '굿판'을 계속 벌여 나갈 태세다. 확산되는 관세 공포 속에서도, 그는 "무엇인가를 고치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며 태연자약하다. 6일 워싱턴DC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은 1조9000억달러의 무역 손해를 계속 볼 수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어 SNS에 "무역적자 해결법은 관세뿐"이라며 통상전쟁을 밀고 나갈 뜻을 밝혔다.
지난 3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20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25%의 상호관세를 두들겨 맞은 우리도 태풍 속에서 위태롭다. 유달리 높은 무역의존도로 중국을 겨냥했던 트럼프의 화살에 경쟁국들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릴 처지다.
트럼프가 일으킨 혼돈은 경제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자주의와 동맹으로 세계질서와 안전을 지켜온 미국은 국제안전, 대외원조 등 지구촌 공공재 기여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다. 트럼프는 "무역에서 손해 보며 유럽 보호를 위해 나토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면서 동맹에 안보 무임승차라며 채찍을 들었다.
달라진 국제환경은 EU 국가들을 방위비 증액과 방위산업 강화로 몰아넣었다. 이는 한반도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왜 남의 나라를 지켜줘야 하나. 세계경찰은 이제 그만"이란 고립주의 정서는 미국민 사이에 공감대를 넓히며 트럼프 이후에도 이어질 기세이고, 우리 안보 기반을 흔들며 위협으로 다가온다.
"적자를 계속 볼 수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트럼프 말에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내부균열 속에 부상하는 중국이란 난적까지 상대해야 하는 지친 패권국의 일면이 묻어난다. '팍스 아메리카'를 유지하기에 힘이 부쳐 고립주의로 돌아서고 있는 미국의 피곤함은 문 닫은 공장지대 '러스트벨트'와 겹쳐진다.
트럼프의 미국은 지구촌에 공공재를 제공하던 그 미국이 아니다. '어제의 미국'과 동맹의 토대 위에서 산업화·정보화를 이뤄냈던 우리는 전혀 낯선 경제·안보 환경의 도전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막막함을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균열 심화와 산업경쟁력 약화까지 더해져 내우외환의 '퍼펙트 스톰'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교육·보건·계층이동성 약화, 무너져가는 중산층, 문해력 하락, 산업경쟁력 약화…." 소련 해체를 예견했던 프랑스 역사학자 에마뉘엘 토드가 "미국 사회가 '소련말기 증후군'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요인들이다. 가슴 철렁할 정도로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래를 향한 공동비전을 만들고,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을 넘어가려면 상식과 균형의 복원, 공감대의 회복이 절실하다. 역사의 분수령에서, 국제환경의 지각변동 속에서 이번 대선이 이를 향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온 국민이 각고정려의 뜻을 모아야 한다. 역사는 낙오자를 돌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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