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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춤과 함께] K발레의 세계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09 18:04

수정 2025.04.11 07:52

'왕자호동' '허난설헌' 등
가장 한국적인 '창작발레'
세계시장 수출 머지않아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K문화가 세계적 유행이 된 것과 더불어 우리의 문화를 세계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발레 작품에서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한국의 전통 문학을 바탕으로 한 발레 작품을 통하여 국내외에 우리의 전통 문화와 한국 발레의 가치를 알리려는 시도가 지속되어 왔고, 발레라는 서양의 춤과 한국적인 소재와 감성을 결합하여 많은 창작 발레가 제작되어 왔다. 대표적 작품으로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과 허난설헌, 유니버셜발레단의 심청과 춘향을 들 수 있다.

2009년 제작된 '왕자호동'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신비한 북 자명고를 둘러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국경을 초월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국가 간의 전쟁, 사랑, 배신을 테마로 하여 기존의 서정적인 클래식 발레와는 다른 강렬한 전쟁 장면으로 막을 연다. 강렬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고구려인의 기백이 느껴지는 웅장한 남성 무용수의 군무 외에 다양한 부족들의 춤, 태권무 등 전통적인 춤의 요소가 결합된 군무를 볼 수 있다. 안무, 연출, 음악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어 한국적인 고유의 정서가 작품에 나타난다. 전통적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만 한국적이면서도 서양 발레 음악의 형식에 맞는 음악으로 작곡되었으며, 특히 한국 전통 음악의 수제천 형식을 바탕으로 거문고, 생황, 나발, 박 등 한국 전통악기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여 동서양이 공존하며 이질감이 들지 않는 발레곡으로 작곡되었다. 의상은 고구려 벽화의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고 무대디자인 또한 고구려 고분에서 영감을 얻어 그 시대의 문양과 궁전, 소품 등을 통하여 고구려와 낙랑국을 재현하였다. 왕자호동은 화려한 무대미술과 웅장한 음악, 한국적인 정서가 깃든 작품으로 발레 고유의 테크닉과 양식을 유지하면서 한국적인 감성을 표현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017년 초연된 '허난설헌-수월경화'는 빼어난 글솜씨를 가졌지만 여성의 재능이 인정받기 힘들었던 조선 중기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아름다운 시로 풀어내 당대 문인들의 극찬을 받았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아름답고 가혹했던 삶의 일대기를 발레화한 작품이다. '수월경화'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으로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그녀의 작품 중 '감우'와 '몽유광상산' 두편의 시를 발레화하였다. 전체적으로 무대 연출과 의상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으로 한국화를 그려놓은 듯 여백의 미를 형상화한 절제되고 단아한 무대와 의상이 돋보인다. 허난설헌의 아름다운 시를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그녀의 섬세한 감정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풀어나간 작품이며, 한국적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접목한 작품이다. 허난설헌의 시에 등장하는 잎, 새, 난초, 바다, 부용꽃 등 다양한 소재를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형상화하였고 의상은 전통 한복의상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감성을 더했는데 무용수의 움직임과 함께 어우러져 무대 위에서 더욱 아름답고 처연해 보인다.

창작 발레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지젤, 호두까기 인형 같은 우리가 잘 아는 클래식 발레작품이 아닌 다소 실험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클래식 작품에 비해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매해 수많은 창작 발레가 제작되며 그중 대중의 사랑을 받고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손에 꼽는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모두 갖춰진 창작 발레는 지속적으로 공연되어 언젠가는 클래식 작품으로 당당히 불릴 것이다. 예전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도 그 시대엔 창작 발레였고, 혹평을 받았다.

K문화가 유행하고 한국의 발레 수준이 높아진 만큼 한국 발레가 기획 단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여 미래지향적 안목과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과 한국적 색감을 가지고 창작 발레를 제작한다면 우리의 발레 작품도 머지않아 세계 발레단에 수출될 날이 올 것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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