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미국을 중국과 같은 잠재적 적성 국가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소식통들을 인용해 EU 집행위원회가 미국으로 가는 직원들 일부에게 버너폰(깡통폰)과 단순한 기능만 있는 노트북컴퓨터를 지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너폰은 사용 비용을 먼저 지급한 값싼 휴대폰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임시로 쓰는 휴대폰이다. 폰에 과거 정보가 없어 이를 통해 정보를 캐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스파이 활동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중국 출장에나 적용되는 관행이다.
유럽이 이제 미국을 믿지 못하겠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EU는 다음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 참석하는 집행위원들과 고위 관리들에게 이런 지침을 전달했다.
이 지침은 중국 출장, 또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출장 갈 때에나 적용되는 지침이다. 이들 나라에 방문할 때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정보기술(IT) 기기는 휴대하지 않도록 돼 있다.
한 EU 관리는 “집행위가 미국이 EU 시스템에 숨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잠재적으로 안보 위험이 높은 국가로 대하기 시작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다시 취임하면서 대서양 양안 관계가 얼마나 악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록 지난 9일 90일 유예를 결정했지만 EU에 20% 상호관세를 물렸다.
안보 면에서도 EU에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칭송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지하자원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를 위해 일시적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또 EU에는 대놓고 안보 우산을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EU 관리는 “대서양 양안 동맹은 끝장 났다”고 단언했다.
싱크탱크 브뤼셀지정학연구소 소장 루크 반 미들라르는 “워싱턴이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는 아니지만 적성국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면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힘을 추구하기 위해 탈법적인 방법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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