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화 없는 주4.5일제 없다>
대선을 앞두고 '주4.5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근로시간 단축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그러나 생산성 하락에 대한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도입 등으로 일의 효율은 높아졌지만, 근로형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기획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 '유연한 일의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주 4.5일제를 다시 묻고자 한다.
대선을 앞두고 '주4.5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근로시간 단축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그러나 생산성 하락에 대한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도입 등으로 일의 효율은 높아졌지만, 근로형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주 4.5일제, 꿈같은 제도? 실현가능성은 [유연화 없는 주4.5일제 없다(상)]](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4/15/202504151651465163_l.png)
[파이낸셜뉴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주 4.5일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세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요 대선 후보들이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 정책 설계의 현실성, 업종별 적용 격차를 둘러싼 논쟁도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명칭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15일 현재 여야가 제시한 ‘주 4.5일제’ 공약은 표면상 동일한 명칭을 쓰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방식과 철학이 크게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에 두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주간 총 근로시간은 유지하되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빨리 퇴근하는 유연근무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의 ‘한국의 장시간노동 실태와 노동시간 단축 모색’ 보고서는 국민의힘이 제시한 방식에 대해 “유연근로 형태의 주 4.5일제는 실질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 은폐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주 52시간제 폐지와 병행될 경우 오히려 과로 문제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임금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AI와 첨단 기술 도입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된 만큼, 이제는 장시간 노동 구조를 혁신할 수 있는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산업계는 생산성 하락을 우려하며 근로시간 단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시의적절하지 않다”며 “법제화보다는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이미 자체적으로 주 4일제 또는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해 실험 중이다.
노동시장 격차 확대 우려
주 4.5일제가 단순한 ‘시간 단축’으로 설계될 경우, 직군과 업종 간 적용 가능성에서 큰 차이가 불가피하다. 공공기관, 금융권, 일부 대기업 등에서는 제도 도입이 가능하겠지만 서비스업이나 중소기업, 소상공업계는 인력과 여건상 도입이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국대 경영학과 윤동열 교수는 “실제 워라밸이 시급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겐 주 4.5일제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며 “법제화를 통한 일괄적 적용보다는 각 산업과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자율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 전환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윤 교수는 “주 4.5일제 논의는 단순한 공약을 넘어 노동 방식의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는 인력 운용과 생산성 유지를 위한 ‘유연한 일하는 방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주 4.5일제’는 단순한 시간 단축 정책이 아니라, 유연성과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한 ‘일하는 방식의 대전환’이어야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근로시간 통계 국제비교로 본 정책 방향’ 보고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짧은 근로시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유럽의 근로자들이 특이 시간대나 장시간 근로를 감수하는 대신, 시간과 장소에 대한 자율권이 확보되고, 성과급 등 인센티브가 활성화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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