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각각 3% 안팎 폭락했고, 미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3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금 가격은 온스당 3400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 파월을 연준 의장에서 쫓아내기 위해 수개월 동안 논의해왔다는 보도가 나온 데 이어 이날에도 파월 압박을 지속한 것이 금융 시장을 뒤흔들었다.
미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미 달러, 주식, 국채 등 미 자산 전반에 대한 전세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린다.
해임 논의
트럼프는 21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파월 의장을 ‘대형 패배자(major looser)’ ‘미스터 너무 늦은(Mr. Too Late)’이라고 부르며 조롱하고, 파월에게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그는 파월이 지난주 시카고경제클럽 연설에서 관세정책을 비판하며 이로 인해 미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연준의 정책 목표를 어디에 둘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트럼프는 자신의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에 인플레이션은 없다면서 에너지 등 일부 품목 가격은 외려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연준의 늑장 금리 인하가 경기침체를 몰고 올 수 있다면서 만약 경기침체가 오면 이는 자신의 관세 때문이 아니라 파월의 금리 인하가 늦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백악관은 파월을 무력화하는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경제 보좌관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8일 밤 백악관이 현재 적법하게 파월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5월이 의장 임기 만기인 가운데 파월이 자진 사퇴 가능성을 일축한 터라 트럼프는 파월을 쫓아내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또 그를 해임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의장 역할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동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타당한 사유
현행 법으로 파월을 연준 의장에서 해임하려면 ‘사유’가 있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정치적 이견은 이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법학자들은 트럼프가 연준의 정책 판단 실수를 해임 사유로 들고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것으로 판단해 늑장 대응하는 바람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초래된 것을 해임 사유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를 빌미로 해임에 나서면 이는 오랜 법정 싸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아울러 연준의 권위 역시 급격하게 약화된다.
대법원 판례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장을 해임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파월은 대법원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변호사 출신 투자은행가인 파월이 대법원 판례로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지 판례를 뒤지고 있는 것이다.
파월은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DR)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특정직은 타당한 사유 없이 해임하지 못하도록 한 판례를 들어 트럼프가 자신을 연준 의장에서 해임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파월은 16일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판례”라면서 그러나 이 판례가 연준에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림자 연준 의장
트럼프가 파월을 해임하지 못하더라도 트럼프 경제팀이 연준을 무력화할 가능성은 남는다.
이 가운데 트럼프 이너서클에서 논의되는 방안은 ‘그림자’ 연준 의장을 내세워 파월의 발언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파월의 후임으로 유력하다고 시장이 판단하는 인물을 내세워 이 그림자 연준 의장을 통해 내년 5월 파월 임기 만료 전에 사실상 연준 통화정책 행보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 그림자 연준 의장이 공개적으로 파월의 방침과 다른 발언을 하고, 이를 통해 연준 의장의 신뢰성을 효과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또 내년 5월 의장이 교체되면 지금의 통화정책은 궤도가 수정될 것임을 시사해 연준 통화정책의 시장 영향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뒤흔들면서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게 되면 미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 질서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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