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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1980년 사북…망각의 세월 돌려세운 박봉남 감독

뉴시스

입력 2025.04.22 10:23

수정 2025.04.22 10:23

국가폭력에 짓밟힌 광부들의 절규, 45년 만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1980사북'다큐 영화를 만든 박봉남 감독이 지난 21일 정선군 고한시네마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1980사북'다큐 영화를 만든 박봉남 감독이 지난 21일 정선군 고한시네마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우리가 누구를 위해 싸웠는데, 왜 아무도 고맙다 하지 않는가.”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던 탄광촌은 순식간에 '폭도의 마을'로 낙인찍혔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부(합수부)는 광부들의 절규를 폭동으로 왜곡했고, 경찰관 사망을 이유로 수백 명을 붙잡아가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으로 죄인을 만들어냈다.

국가폭력은 광부들의 절규에 ‘폭력 프레임’을 씌웠고, 피해자와 지역주민, 심지어 당시 가해자들까지 사건을 금기어처럼 입에 올리길 꺼려왔다.

광주민주항쟁의 그늘과 ‘사북사태’ 비난 속에 묻혀 졌던 이 사건은 탄광촌 사북이 민심이반의 ‘뇌관’이었기에 강원랜드 설립의 뿌리가 되었다는 진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그 잔혹한 진실이 45년이 지난 지금, 다큐멘터리 영화 ‘1980사북’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 ‘1980년 사북’은 비무장지대(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수상작이다.

이 잊혀진 진실을 되살린 이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1980사북’의 박봉남 감독이다.

박 감독은 지난 21일 정선 고한시네마 특별상영회에서 "사북사건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금기어가 됐다. 피해자, 가해자, 지역사회 모두가 외면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주의 충격에 사북은 철저히 가려졌다. 그러나 사북은 제2의 광주가 될 뻔한, 유혈사태 일촉즉발의 위기였다"고 덧붙였다.

2019년 8월 정선경찰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980년의 고문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는 이명득씨. 그는 그해 가을 고문후유증으로 요절했다.(사진=1980사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019년 8월 정선경찰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980년의 고문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는 이명득씨. 그는 그해 가을 고문후유증으로 요절했다.(사진=1980사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박 감독은 5년6개월 동안 50여 명의 피해자와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기록했다. 스님이 된 전직 광부, 고문과 폭력의 후유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인터뷰는 눈물과 한숨을 소환한다.

"사북사건은 결코 과거형이 아닙니다. 모두가 외면했기에, 지금도 누군가는 그날에 머물러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국가폭력의 진실 앞에 여전히 머뭇거리는 대한민국을 향한 질문이다.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 역시 이날 상영회에서 "광부와 부녀자들이 국가라는 이름 아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원갑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당시 사건으로 경찰관들이 목숨을 잃고, 지부장 부인 등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분과 유가족 및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박봉남 감독은 영화에서 단지 고발을 넘어서, '기억'을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사북사건을 통해 ‘국가’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 폭력을 기억에서 지워왔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이 영화가 피해자의 명예회복뿐 아니라, 사북이라는 지역공동체가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구세진 광산진폐권익연대 회장은 “사북항쟁이 강원랜드 설립의 근간이 되었기에 강원랜드 임직원이 반드시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여성 관람객 A씨도 “고한사북주민들도 이 영화를 통해 사북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1980년 4월 24일 강원도 정선 사북에서 발생한 사북사건을 당시 계엄하의 신문들은 모두 '사북사태, 광부들의 난동으로 매도하고 있다.(사진=신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1980년 4월 24일 강원도 정선 사북에서 발생한 사북사건을 당시 계엄하의 신문들은 모두 '사북사태, 광부들의 난동으로 매도하고 있다.(사진=신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오는 26일과 27일 고한시네마에서 특별 상영을 이어가며, 가을엔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사북의 고통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어두운 기억을 외면해온 한국 사회 전체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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