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은행이 정부의 봉인가

박문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22 18:06

수정 2025.04.22 21:49

박문수 금융부
박문수 금융부

7조6235억~11조4352억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고채 경쟁입찰에 참여한 15개 금융사에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과징금 규모다. 공정위는 지난 2023년 6월부터 국고채 전문딜러(PD)인 금융사에 대한 입찰 담합 조사를 벌여왔다. 7개 은행(KB국민·기업·NH농협·산업·하나·SC제일은행·크레디아그리콜)과 11개 증권사가 사전에 짜고 국고채 입찰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올해 2월 기획재정부가 국민은행과 NH투자·메리츠·KB증권 등 5개사를 2024년 하반기 우수 국고채 PD로 선정한 것이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예고한 최소 4곳에 기재부는 오히려 경제부총리 표창을 수여했다.

같은 정부에서 같은 행위를 두고 기재부는 상을 줬는데 공정위는 벌을 주겠다고 나서는 기이한 모양새다. 국고채 PD는 국고채의 원활한 발행과 유통을 위해 기재부가 일정 자격을 갖춘 금융기관을 선정해 지정한다. 국고채 PD사는 국고채 발행물을 인수해야 하고, 지표종목 매도·매수 호가를 제출해야 한다.

한 PD사 관계자는 "국고채는 최소한 당행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된다"면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쭉 인수손실이 발생해 관련 업무를 접었는데 감사원에서 역할을 하라고 지적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할당량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담합해서 손실을 내는 바보가 어딨나. '억까(억지로 까내리기)'가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국고채 입찰 결과를 살펴보면 통상 낙찰금리는 시장금리보다 낮았다. PD사들이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손해 보며 국가 시책에 협조한 금융사들이 담합했다고 과징금을 내야 할 판인데 과징금 산정방식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국고채 낙찰금액을 매출액으로 간주해 과징금을 조 단위로 산정했다"며 "낙찰과정에서 발생한 수수료 수익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최대 11조원의 과징금을 금융사가 감당할 이유도, 감당할 수도 없다.

공정위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담합해 주택 담보인정비율(LTV)을 하향 조정했다고 주장한다. 은행들은 LTV 정보를 주고받았지만 LTV가 떨어지면 대출액이 감소해 이자수익도 줄어드는데 '왜 담합을 하느냐'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정보교환 그 자체만으로 담합이니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은행업에 대한 '맹공'을 서슴지 않았다. '은행 돈잔치' '은행 공공재'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한다' 등 잊을 만하면 은행을 여론의 도마에 세웠다. 그때마다 공정위는 은행권을 '조사'로 흔들었다. 은행이 정부의 봉인가.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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