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탄핵·비상계엄 사태로
국민이 개헌 필요성 공감
'용산 대 여의도' 구도 깨야
국민이 개헌 필요성 공감
'용산 대 여의도' 구도 깨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오는 6월 3일 이른바 '장미 대선'이 치러진다. 애초 이번 21대 대선은 장미보다 새로운 헌법의 싹을 먼저 틔울 낌새였다. 여야 대권 잠룡들이 앞다퉈 개헌론을 제기하면서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달 초 대선·개헌 동시투표론을 띄웠다. 그러나 열기는 시나브로 가라앉고 있다.
탄핵 정국을 거친 국민이 현행 헌법의 한계를 알아챈 까닭일까. 지난 3월 7일자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현행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는 국민이 54%에 달했다. 4월 12~15일 '트렌드 풍향계' 여론조사(트렌드리서치)에선 응답자의 77%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물론 12·3 비상계엄은 윤 전 대통령 스스로 화를 부른 자해극이었다. 다만 국민은 그 과정에서 거대 야당의 횡포도 한몫했다는 걸 인식했을 법하다.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도 결정문에서 이를 인정했다. 즉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사족을 달았지만.
물론 이는 하나 마나한 훈수였다. 압도적 다수인 야권의 폭주로 인한 국정마비를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했으니…. 건국 이래 84년간 역대 야당이 소추한 탄핵안은 모두 21번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3년간 탄핵을 무려 30번 시도했다. 그것도 12개 범죄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대표 '방탄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소여(小與)는 속수무책이었지 않나.
여야를 떠나 수적으론 현행 헌법을 속히 고치자는 흐름이 대세다. 김문수 홍준표 등 국민의힘 주자들뿐 아니라 김동연 김경수 등 이 전 대표를 뺀 민주당 후보들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야당 출신 우 의장은 개헌 시기를 놓고 오락가락했지만,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등 국힘 지도부는 당장 하자는 입장이다. 안철수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그리고 민주당 경선 참여를 포기한 김두관 전 의원도 대통령 임기단축을 전제로 개헌안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대선 전 개헌 가능성은 불투명해 보이니 문제다. 유력 주자인 이 전 대표가 부정적이어서다. 그는 우 의장이 권력분산형 임기 4년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개헌은 필요하지만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했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임기단축을 약속했던 지난 대선 때와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이는 개헌 이슈에 휘말려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수 없다'는 차원의 대응으로 해석된다. 즉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등이 수사기관을 오가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는 게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계산인 셈이다.
봇물처럼 제기된 개헌론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비상계엄 사태를 부른 배경이 뭔가. '용산 대통령'에 맞서는 '여의도 대통령'이란 구도는 또 왜 나왔겠나. 대통령과 절대 다수당이 "너 죽고 나 살자"며 '오징어게임'을 벌인 탓이었다. 개헌의 초점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건 물론, 한 정파가 거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해 '황제급'이 된 국회 권력의 횡포를 막는 데도 맞춰져야 할 이유다.
그렇잖아도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를 골자로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임기 동안 안정적 국정 운영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빛이 바래면서 제왕적이라는 오명만 남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든 야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개헌을 외면할 까닭이 없다. 모든 주자들이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의 벼랑 끝 충돌을 완충하는 장치를 담은 개헌안과 추진 시기를 공약해 국민의 평가를 받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